무능함의 역설

무능한 것은 왜 장점이 되는가

by 인사부조화
Q. 고용이 매우 경직적인 한국 조직에서, '무능력함'이 오히려 어려운 일을 덜 맡고 타 조직으로 이동하지도 못한 채 장기근속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고, 정작 실력 있고 유능한 직원은 험지로 내몰리거나 어려운 일만 도맡게 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말씀하신 내용은 특히 고용 경직성이 높은 문화권에서 실제로 자주 관찰되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무능함의 역설' 또는 '조직 경직성의 딜레마'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1. 현상의 본질: 관리의 '최소 저항 경로'

관리자(임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무능력한' 직원 (A): 이미 성과가 낮고 변화의 의지가 적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임무나 '험지'를 맡기는 것은 프로젝트 실패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며, 이들을 이동시키려 할 때 발생하는 저항과 갈등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큰 감정적/시간적 소모입니다. 따라서 '알려진 리스크'로 분류하고, 현상 유지만 시키는 것이 관리자에게는 가장 쉬운 길(최소 저항 경로)입니다.

소모되는 '유능한' 직원 (B): 이들은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120%의 슈퍼스타는 아닐지라도, 90~100%의 신뢰도로 업무를 완수합니다. 조직에 급한 불(험지)이 생겼을 때, 관리자는 당연히 A가 아닌 B를 투입합니다. 그게 가장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A는 '무능력'을 방패 삼아 안정성을 획득하고, B는 '유능함' 때문에 더 힘든 일을 떠맡게 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2. 이 현상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 조직의 '허리'가 무너진다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핵심 인재(B)의 소진(Burnout):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는 이 '유능한' 직원들은 불공정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왜 나만 일하는가?', '열심히 해봤자 힘든 일만 돌아온다'는 인식이 생기면 동기가 급격히 저하됩니다. 이들은 결국 지쳐서 조직을 떠나거나, 냉소주의 및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상태가 되어 스스로 '무능력한' 직원(A)처럼 행동하게 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역동성 상실: 성과와 보상의 선순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조직 전체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합니다.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지고, 오히려 적당히 무능력하게 보이는 것이 도리어 생존에 유리하다는 잘못된 학습이 일어납니다.

고인 물 현상(A)의 심화: '무능력한' 직원(A)은 편안하게 장기근속하며 조직의 상수가 됩니다. 이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조직의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신규 입사자나 유능한 인재들의 변화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립니다.


3. 근본적인 원인: '해고 경직성' + '방치'도 관리라 착각하는 리더

말씀하신 대로 '고용 경직성'이 이 현상의 중요한 전제조건입니다. 저성과자를 쉽게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원인을 그것만으로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사실 리더가 '적극적인 성과 관리'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역할 부여(R&R): '무능력'을 이유로 쉬운 일만 하며 편안하게 있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명확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해야 합니다.

'유능한' 직원에 대한 확실한 보상: '어려운 일'을 맡고 '험지'로 가는 '유능한' 직원(B)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파격적인 보상(승진, 금전적 보상, 향후 커리어 선택권 보장 등)이 따라야 합니다. '힘든 일'이 '벌'이 아니라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요약하자면, 이 현상은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에 급급한 관리자들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조치저성과자 관리는 포기하고 유능한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직 시스템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매우 심각한 조직 비효율의 합작품입니다.


이는 결국 조직의 건강한 선순환을 무너뜨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문화를 고착화시켜 조직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좀먹게 만드는 병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