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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ruvuru Aug 20. 2017

<더 테이블>, 하루를 훔치는 4편의 이야기

영화 <더 테이블> / 김종관 감독

※ 브런치 <더 테이블> 시사회 후기 (늘 감사드립니다)


 

한적한 거리 위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카페. 창문 옆으로 우두커니 자리한 하나의 테이블. 그곳을 찾는 각기 다른 8명의 사람들. 그리고 곧이어 오가는 네 가지 이야기. 타인은 알길 없는 저마다의 사연을 얼굴 위로 희미하게 띄우고,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다만, 아주 조심스럽게 모든 게 아닌 일부를. 행여 들킬까 봐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꽃만이 그들의 속내를 훔치고 이윽고 하루가 다간다.


첫 번째 이야기. 정유미 & 정준원

오랜만에 만나 긴장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두 남녀의 긴장감은 서로 다르다. 여자의 긴장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만한 그런 긴장이 맞다. 설렘에서 오는 애틋한 긴장이다. 하지만 남자의 긴장은 달랐다. 이윽고 여자는 이 사실을 깨닫고 서서히 굳는다.


두 번째 이야기. 정은채 & 전성우

두 남녀의 말에는 알게 모르게 가시가 돋쳐있다. 하지만 그 가시는 뾰족하게 솟아있다가도 이내 물러 빠진 가시처럼 맥없이 주저앉는다. 박혀도 아프지 않은 가시는 과연 어떤 상처를 남길까. 흔적 없는 생채기는 두 남녀를 계속해서 가렵게 만든다.


세 번째 이야기. 한예리 & 김혜옥

이 세상에서 가장 추잡하고 못난 것이 가장 어여쁜 무언가로 변한 순간. 애써 순결한 척하여 이를 한사코 끌어안았지만 그것이 마냥 이뻐 보이지 않은 순간. 그 순간이야 말로 과거를 통감하고 미래를 직시하는 순간이다. 너무나도 뒤늦게 소중한 걸 알게 된 한 여자. 그리고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한 여자. 이 순간만큼은 모종의 거래를 위해 만난 그들이 마냥 타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네 번째 이야기. 임수정 & 연우진

돌아가고 싶은 남자와 돌아오기를 바라는 여자. 정확히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 두 남녀. 서로가 듣고 싶은 말과 하려는 말의 머뭇거림 사이에서 두 남녀는 분명히 서로의 말을 다 했다. 다만, 온전히 듣고 싶었던 말이 그게 다가 아니라서. 결국 서로를 놓아주는 두 사람. 못내 확인하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두 남녀의 관계는 꽃을 산산이 부수고서야 공허한 밤을 맞았다.



비록 <더 테이블>이 연거푸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배열해 구성했다지만, 독립된 이야기들만을 가지고는 결코 영화의 큰 맥락을 만들기는 어렵다. 산만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이 영화의 70분이라는 상영시간은 이를 포용할 수 있는 한계와도 같은 시간이다. 각기 다른 4편의 개성 있는 이야기와 주어진 짧은 시간을 적절히 활용해 극대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다만, 지루할 정도로 정직한 연출과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은 서정적인 무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들게 만드는 이 영화의 울림에는 그 어떠한 이견도 없다.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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