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MBTI는 JJJJ
나의 MBTI는 JJJJ이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온라인에 올라온 거의 모든 임신, 출산 준비물 리스트를 섭렵했고, 30주부터 조리원 가방을 싸기 시작했으니, JJJJ가 확실하다.
조리원에 가져갈 준비물을 챙길 때, 제일 먼저 주문한 것은 ‘일기장’이었다. 평소에도 나는 회사에서 쓰는 업무용 다이어리와, 평소의 내 계획과 루틴을 정리하는 데일리 다이어리, 그날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때 쓰는 일기장 등, 여러 가지 노트를 쓰는 편이다.
손글씨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기를 낳을 때 순간을 기록하기로 동영상보다 일기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41주가 되도록 도저히 진통이 오지 않아 유도분만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 날이 22년 3월 14일이다. 그 날의 기록은 설렘 가득한 글씨로 잘 적혀있다. 아기를 만날 생각에 마냥 두근거렸겠지. 지금도 일기장을 들춰보면 내가 그 날의 나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턴 기록이 없다. 인생 처음으로 겪는 상상을 초월한 고통에 손에 펜은커녕 베갯잇만 쥐었던 기억밖에 없다. 도대체 이 고통을 어떻게 세 번이나 견디며 우리 엄마는 형제자매들을 낳았는지, 엄마의 엄마는 어떻게 이 고통을 네 번이나 겪으며 삼촌, 이모들을 낳았는지. 5분 간격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을 떠올리며 버텼다.
옆에서 내가 겪는 진통을 적나라하게 지켜본 남편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조금만 내 표정이 구겨져도 괜히 잘못한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며 내 곁을 지켰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아기가 더 내려와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정말 눈물콧물을 흘려가며 산부인과 병원 1층에서 5층까지 계단을 반복해 올랐고, 자궁문이 더 열려야한다는 간호사선생님의 말씀에 짐볼을 끌어안고 엉엉 울며 아기가 조금이라도 더 내려오기를 빌었다.
양 옆의 병실에서 산모들이 고통에 받친 신음을 질러댈 때마다 지레 겁을 먹고는 수술하면 안 되냐고 남편을 달달 볶기도 했다.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침대 위에서 3분 간격으로 잠이 들었다가 진통이오면 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품에서 나온 아기를 안아 들었을 때,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목숨 걸고 치열하게 살아갈 순간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중에 아기에게 나름대로의 기록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젠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아기가 자라는 순간은 오히려 때를 놓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손글씨를 남겨주고 싶었다. 신생아 처치를 위해 아기가 간호사에게 안겨 나가고, 나도 병실로 돌아와 땀에 젖은 머리칼도 좀 매만지고, 가족들한테도 연락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들었을 때, 바로 일기장을 꺼냈다.
2022년 3월 16일.
14일에 입원해서 장장 이틀이 지나서야 저녁 18:46분에 박뽀물이가 태어났다. 쑥하는 느낌과 함께 내 품에 작고 따뜻한 박뽀물이가 안기는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아파서 지치기도 하고, 마지막엔 수술시켜 달라고 했는데, 막상 수술했으면 이 황홀한 순간을 온전히 못 느꼈겠지. 41주 2일. 42시간의 진통 끝에 3.74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나준 뽀물아. 너무 반갑고 고마워. 앞으로 우리 행복하자. 벌써부터 사랑해.
아기가 돌이 되면서 1년간의 육아일기는 마침표를 찍었다. 물론 일기쓰기를 빼먹은 날도 많고, ‘지친다’라고 세 글자만 적은 날도 있다. 그래도 ‘이 건 엄마가 남긴 온전한 너의 기록유산이다.’ 하고 나중에 아이에게 물려 줄 것이다. 너를 처음 만난 순간을 나중에 네가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때, 이 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같이 읽어볼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