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아이는 영 불편한지 수액 바늘을 꽂은 자신의 작은 손을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10개월 즈음, 폐렴 진단을 받은 아이는 결국 입원을 했다. 어쩐지, 기침소리가 좀 이상하다 싶었다. 숨소리가 이상하니 큰 병원 소아과로 가보라는 말에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서는 그 날 바로 입원을 해야 하니 급한 짐만 가져오라고 나를 재촉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회사는 어떡하지? 며칠을 입원해야 하는거지? 이유식은 어떻게 하지? 머릿속은 시끄러웠지만 몸은 나도 모르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집에 가는 차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 기저귀와 장난감, 아이의 여벌 옷 등 눈에 보이는 것은 일단 다 챙겼고,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회사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휴가를 신청했다.
아이를 케어할 것은 다 가져왔지만, 정작 내 몸은 챙기지 못한 채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와 나는 1인 병실에 멀뚱히 앉아있었다.
입원하자마자 가져온 포대기를 꺼냈다.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이유식을 데우고,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자판기 앞에 서서 커피 마실 여유까지도 챙겼다. 무엇보다도 포대기가 필요했던 순간은 밤에 아이를 재워야 할 때였다.
아직 아이가 걷지도 못할 때여서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와 연결된 수액줄이 다 꼬여버렸다. 평소라면 아이는 침대에 누워 여기저기 뒤척이며 잠들었을 텐데, 여기선 그럴 수가 없었다. 첫 날부터 바뀐 환경에 아이는 계속 칭얼댔고, 밤에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포대기에 업고 병동을 돌아다녔다.
다음날부턴 본격적으로 저녁 분유를 먹이고 소화를 좀 시킨 후 아이가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면 바로 포대기에 업고 병실에 있는 창문으로 바깥 구경을 했다.
“저기 봐라, 아빠 차랑 똑같은 차가 지나가네. 저기 봐라.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노래도 불러주며 한참을 서 있다 보면 아이는 이내 내 등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사흘 밤을 업고 재웠다. 유독 병원에선 낮잠보다 밤잠에 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낮에는 시끌시끌하다가 밤이 되어 조용해진 병원이 너무 고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이가 간신히 밤잠이 들면, 그제서야 나는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부랴부랴 씻고, 젖병 설거지를 한 후 아이 옆에 누울 수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기도 했고, 몇 시간 마다 들어와서 수액을 확인하는 간호사의 인기척 때문에, 아이가 뒤척이다가 바늘이 뽑히기라도 할까봐 걱정되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나도 병원에선 푹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퇴원하기 전날 밤은 달랐다. 그 날은 유독 아이가 병실 안을 답답해했다. 밖으로 나가자고, 나가 구경하자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나는 엄마도 힘들다고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미안해져 아이를 업고 병동을 걸어 다녔다. 그날 밤은 며칠 째 계속된 포대기 업기로 허리가 너무 아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침대에 눕혀서 아이를 토닥이며 한참 혼잣말을 했다. 진짜로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듣는지는 몰라도, 며칠 째 대화상대도 없이 아이와 4일 밤낮을 지내려니 그간 속에 쌓인 말들을 아이에게 했다.
“엄마는 사실 여기 밥이 맛있어. 오늘 엄마랑 먹은 과자는 아빠한테 비밀로 해야 해. 집에 가면 엄마랑 아빠랑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자. 엄마 회사에서 지난주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고 주제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하다보니 아이는 어느 샌가 쌕쌕거리며 내 팔을 베고 잠이 들어있었다.
한 손은 내 배위에 얌전히 올려놓은 채로.
순간, 눈물이 났다. 아픈 게 네 잘못도 아닌데 엄마는 오늘 너한테 화만 냈구나 싶어서. 병원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오히려 너에게 신경질만 냈구나. 천사 같은 얼굴로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에 아이는 평온하게 잠이 들었지만 나는 속에 찬 눈물을 비워내느라 한참이나 늦게 잠이 들었다.
아이는 밤에 자는 동안 쑥쑥 자란다. 그날 밤 엄마가 처음인 나도 같이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