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바다에 업힌날
여름이 되자 스노클링이 너무 가고 싶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곳 제주는 어딜 가든 바다가 보인다. 아이를 낳은 산모는 설거지도 차가운 물에 하면 안 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온 몸을 바닷물에 담그는 것을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의 여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집에서 뭐하냐고, 얼른 나와서 내 품으로 뛰어들라고 바다는 계속 내게 손짓했다. 원래 여름이 되면 나는 차 트렁크에 항상 스노클링 장비들을 넣고 다녔다. 퇴근 후 회사에서 래쉬가드로 갈아입고 근처 포구에서 한 시간 물놀이를 하고 집에 가자마자 샤워 후 들이키는 맥주 한 잔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사는 맛이 났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나서는 물에 들어갈 수도, 모유수유로 맥주를 마실 수도 없었다. 동굴에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고자 했던 곰처럼 출산 후 집 밖으로는 최대한 나가지 않았었다. 아기 케어에 온 정신이 쏠려 나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퍼뜩 떠올리지도 못했다.
3월에 출산 후 길고 길었던 백일이 지나자, 나만 빼고 전부다 제주의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물에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 위를 부유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고 친한 동생과 급하게 날짜를 잡았다. 이사하며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스노클링 장비들을 꺼내 오늘만큼은 아기 대신 그것들을 품에 안고 집을 나섰다. 날씨는 너무 좋았다. 하늘은 밑도 끝도 없이 푸르렀고, 오늘따라 미세먼지도 없었다. 구름은 내 마음처럼 두둥실 여기저기 떠올라있었고, 오랜만에 재생한 플레이리스트는 유독 여름과 찰떡인 노래들만 흘러나와 설레는 내 마음에 바람을 더 불어넣었다.
동쪽바다에서 동생을 만나 구명조끼를 입고 물안경을 끼고, 오리발을 찬 다음 바다에 달려가 안겼다. 바다는 여전했다. 왜 이제야 왔냐고 시원한 바닷물이 내 온몸을 놀리듯 간지럽혔다. 육아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숨 좀 돌리라며 따뜻한 햇살은 내 두 눈을 감겨주었다.
나는 양수에 들어있는 아기처럼 온 몸의 힘을 풀고 바다에 의지했다. 신생아를 돌보면서 24시간 항상 출동 모드로 긴장하고 있던 몸이었기에 1년여 만에 만난 바다는 너무 반가웠고, 포근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헤엄쳐 다녔다. 옅은 곳으로 갔다가, 또 멀리 깊은 곳으로도 갔다가. 맘껏 양 팔을 사방팔방 뻗으며, 두 발로 바닷물을 사정없이 밀어내며 집에 갈 때 후회가 단 한 점도 남지 않도록, 그 더운 여름에도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바다와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잠시라도 헤엄을 멈추면 집에 아빠와 단 둘이 있을 아기가 분유는 잘 먹을지, 잠은 잘 잘지, 엄마의 본분을 잠시 잊은 것에 대한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나는 집에 갈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두 가슴이 묵직하게 모유로 가득 차 더 이상은 바다와 수다 떨 시간이 없었다.
집에 갈 때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담아 온 수돗물로 대충 손과 발을 닦고, 부리나케 시동을 걸었다. 쉴 틈도 없이 헤엄쳤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다. 아직까지 바다에서 하하호호 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해가 아직 중천인데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퍽 서운했고, 조만간 또 오리라 굳은 결심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남편이 혼자서도 꽤나 아기를 잘 본 듯 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래 이제 슬슬 혼자서 외출을 해도 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샤워를 얼른 마치고 1년 만에 한 스노클링 뒤풀이는 맥주 대신 유축기와 함께 했지만.
올해는 여름을 좀 맘껏 누려보려고 한다. 얼마 전 아기와 같이 근처 해수욕장에 갔었는데 아기도 바다를 꽤 좋아했다. 아직은 어려서 물에 들어갈 순 없지만 아기는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 닮아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아 기뻤다. 몇 년 후면 같이 손잡고 바닷물에 두 발을 첨벙첨벙 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일단 엄마만 먼저 바다를 만나서 나중에 우리 아기랑 잘 놀아달라고 얘기해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