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EEL PRETTY

Because I’m your mother.

by 안스

며칠 전, 네 동생을 데리고 소아과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어.

멀뚱히 아기를 품에 안고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따라-하고 출입문 종이 울리더니 젊은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어.


엄마는 몇 초동안 넋을 놓고 그 엄마를 쳐다봤어.

다이슨으로 세팅한 듯 웨이브가 이쁘게 들어간 헤어와 잘록한 허리라인이 보이는 짧은 하얀 니트에 답답한 허벅지 군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청바지를 맵시 있게 입고 카운터로 걸어가는 그 엄마를 보며 나는 조금 주눅이 들었어.

다이소에서 산 2천 원 자리 머리집게로 대충 묶은 머리와 내가 입고 있던 칙칙한 맨투맨 곳곳에는 네 동생이 토한 자국이 묻어있었지. 무릎이 잔뜩 나온 운동복 바지에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다가 집에서 바로 튀어나온 터라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푸석푸석한 내 피부상태와 다르게 그 엄마는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는데도 얼굴에서 빛이 나서 나랑 너무 대조되 보였거든.


샘이 났어 그 엄마가.

칙칙한 내 모습과 다르게 소아과에 오는데도 예쁘게 꾸미고 오는 그 엄마의 여유가 부러웠어.


네 동생의 이름이 불리자 후다닥 진료를 받고 엄마는 작은 네 동생을 꼭 안고 그 뒤에 엄마의 두꺼운 몸통을 애써 숨기며 병원을 빠져나왔어.


집으로 출발하기 전 카시트에 네 동생이 잘 앉아있는지 백미러를 보는 순간, 나는 나와 눈이 마주쳤어.

순간, 부끄러웠어. 내 초라한 행색이.


나도 그렇게 마르고,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면 조금 더 나 자신을 이쁘게 가꿀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자존심이 상하더라고.

매달 찾아오는 생리시기가 겹치면서 몸의 부기가 잘 빠지지 않아 별로 먹지 않았는데도 체중계위의 숫자는 그대로여서 답답해하던 며칠이었거든.


야식을 조심스럽게 권하던 네 아빠에게 괜스레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었지.

그 뒤로 며칠 동안 조금 기분이 다운돼있었고, 우울하기도 했어.


그런데 어제 말이야.

집에서 운동하려고 산 스텝퍼를 세팅해 놓고 넷플릭스 스크롤을 내리다가 ‘I FEEL PRETTY’라는 영화에 손이 멈추었어.


통통한 몸매의 여주인공이 스피닝운동을 하다가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히고, 깨고 나니 자신의 몸이 모델처럼 날씬해 보이는 착각에 빠져서 스스로가 매우 예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 물론 바뀐 건 아무것도 없고 잠깐 미친 듯 본인만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자신에게 스스로 도취된 여자주인공을 보며 처음에는 주변인들도 이상하게 여기지만 어떤 사람은 여자주인공의 자신감에 매력을 느끼기도 해. 그리고 외적인 모습에만 치중하는 여자주인공을 보면서 실망하는 사람도 생겨. 나중에 본인이 착각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고 뚱뚱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주눅 들고 우울해하지만, 여자주인공은 알게 돼.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라는 걸.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엄마는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나도 어디에 머리를 부딪힌 듯 충격을 받았어.

건강을 찾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으면서 점점 외적인 모습에만 눈길이 가고 어느 순간 시간에 쫓겨 무작정 굶으면서 살을 빼려고 하고,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다이어트 약 광고를 검색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어.


돌이켜보면 스무 살 인생 최고로 날씬했을 때의 나도 나고, 너와 네 동생을 뱃속에 품으며 80kg에 육박하던 몸무게를 가졌을 때도 나고, 엊그제처럼 양쪽에 네 동생과 너를 앉혀놓고 서로 밥을 떠먹이면서 단백질 셰이크를 정신없이 마시던 때의 나도 전부 나인데 말이야.


영화를 보면서 스텝퍼로 열심히 운동을 해서인지 땀도 쫙 나고, 마음도 개운해졌어.

다시금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른 다이어트를 하자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내가 세수를 안 해도, 머리를 안 감아도 ”엄마 사랑해~“하고 말해주는 네가 있으니까.

잠 자기 전 누워서 내 뱃살을 툭툭 치며 ”말랑 말랑해~“하고 엄마의 뱃살도 좋아해 주는 네가 있으니까.

급할 때는 양쪽 팔에 너와 네 동생을 안고 걸어가야 할 만큼 튼튼한 허벅지 힘이 아직은 나에게 필요하니까.


어떤 모습이든 나는 여전히 너와 네 동생의 엄마이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너희들을 오래오래 사랑해 줄 엄마니까.


그리고 이건 살짝 자랑인데,

엄마 지금 3일 연속 5km 러닝에 성공했어.


체중계위의 숫자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할게.

누구보다도 내가 내 자신을 제일 사랑해 주며 이뻐해 주고, 그래서 네 눈에 오래도록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엄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게.



엄마, 살 좀 빼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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