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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Dec 27. 2023

나의 교집합 (1)

아가, 집에가서 자야지.

두 앞발은 가지런히 모아져있다.

하얀 반점이 있는 까맣고 길다란 꼬리는 등의 모양을 따라 반듯하게 놓여 있다. 삼각형 조그만 귀는 한쪽이 살짝 접혀있었던 듯 했고, 윤기 없는 거칠고 짧은 까만 털이 작은 몸통을 덮고 있다. 숨을 쉬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갈비뼈 위의 털이 아침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멀리서 바리게이트 아래 까만 점을 발견하자 나는 속도를 줄인다. 비상등을 켜고 살짝 옆 차선을 걸쳐 지나간다. 비록 내 애도의 시간은 비상깜박이를 켜놓는 그 몇 초뿐이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아가를 한 번 더 깨울 순 없다.  


오늘도 보았다.


고양이였다.

전날 밤, 빨래를 널며 오늘따라 깜깜한 밤에 보름달이 환하게 보여 반갑더니.

그래서 그 조그맣고 까만 몸통을 미처 자동차가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대부분은 아침에 본다. 늦은 밤과 새벽사이, 그 시간에는 꼭 급하게 가는 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가들은 시퍼런 불빛의 그 괴물보다 절대 빠를 수 없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시력을 빼앗아가고 경적소리는 잠시나마 귀를 멀게 한다. 마치 메두사의 눈을 마주친 인간처럼 아가들은 그 자리에 돌덩이처럼 굳어져 바스라진다. 그래서 난 아침에 시동을 걸 때마다 밤새 다들 무사히 귀가했기를 기도한다.


깜깜하고 인적이 드문 곳 일수록, 천천히 지나가야한다. 원래 그 길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강아지였다.

바짝 익은 벼의 색깔을 닮은 조그만 강아지.

두 번째 가을을 만나기도 전에, 아가는 차가운 도로 위에서길고 긴 잠이 들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아직도 겨울잠을자는 듯했다. 평화로운 그 표정에 찰나의 고통은 한 점도 읽을 수 없었다. 뒤따라오던 자동차에게 부고를 알리기 위해, 나는 또 비상등을 잠깐 켰다.


호기심에 건넌 길. 새끼를 만나러 가로지르던 길. 먹을 것을 찾아 뛰어든 길. 아무 생각 없이 불빛을 따라 건넌 길. 누군가에게는 오늘 재수 없는 일이 있었다며 담배 한 개비를 물면서 뱉어낼 정도의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억울해야 하는 것인지.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기도해본다.


부디 천천히 가거라. 제발 서두르지 말아라.


이 넓은 땅이 전부 너희들의 집이지만,

맘 편히 길 하나 건널 수 없음은 너무 미안하구나.


어두워진 밤에는 한 번 더 주변을 살피렴.

아무런 불빛도 찾을 수 없고, 오직 네 숨소리만 두 귀에 들릴 때 도로를 건너렴. 말랑말랑한 네 발바닥을 통해 바퀴의진동이 느껴진다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어라. 네 눈에는 마치 커다란 산이 움직이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지나갈 때까지 숨어있다가, 한참 뒤에 겁먹은 네 심장소리만이 두근대며 들릴 때, 그때 나오너라.


아가, 집에 가서 자야지.


(마지막 사진은 저희집 똥강아지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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