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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Dec 31. 2023

포대기와 돌담길(7)

아들의 여자친구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래 솔직해지자.

아들을 낳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 아들은 결국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다는 사실을.


코로나시기에 태어나서 6개월 동안 여자라고는 나와 할머니 밖에 못 본 우리 아들은 생후 8개월 차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 달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모자가 매일같이 눈물의 이별을 하고, 또 다섯 시간 뒤 눈물의 상봉을 하며 세상에는 우리 둘 밖에 없는 것처럼 지냈더랬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행복했었다.


그런데,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차츰 적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집에 오면 아들은 어린이집 가방을 한 팔에 힘겹게 들고 문 앞으로 가서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생활이 재밌었나보다. 하고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는 아들이 기특해 괜히 과자를 주기도 하고, 다음 날 등원할 때는 예쁜 옷을 입혀 보내기도 했었다. 혹시나 집에서지내는 것처럼 장난감도 혼자서 독차지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양보도 하지 않을까 노파심에 담임 선생님께 혹시 진후가 어린이집에서 예의 없게 행동하진 않는지 몇 번씩 여쭤보기도 했었다.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진후는 어린이집에서 참 의젓하게 잘 지낸다고 말씀해주셔서 걱정이 덜긴 했지만, 아들이 다른 의미로 의젓하게 지내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이 잠 든 후, 가끔 남편과 맥주 한 잔을 할 때면 어떻게하면 합법적으로 군대를 보내지 않을 수 있는지, 나중에 대학교를 멀리가면 그땐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심지어 결혼은 생각도 하기 싫어 입 밖으로 잘 꺼내지도 않았다. 그 때마다 남편은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군대는 가야하고, 본인을 닮았으면 스무살이 되자마자 여자친구와 데이트한다고 바쁠 것이다 라며 내 속도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 아이가 군대와 대학 등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렇다 쳐도, 여자친구 혹은 며느리의 편만 들며 애지중지 키워준 나를 나 몰라라 할까봐.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마신 맥주캔이 벌써 쓰레기봉투를한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이다.


회사에서도 동료들에게 “저 아들 장가보내기 싫어요. 제 옆에 평생 끼고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아들 입장은 생각도 안 하냐며 혀를 쯧쯧차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이기적인 것 일까. 열 달을 품고 그리고 꼬박 이틀을 진통을 겪어가며 낳아서, 그 어느 노래가사처럼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며’ 키운 자식인데, 어떻게 아깝지 않을 수 있겠냐고 애써 합리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비슷한 시간에 올라오는 어린이집 알림장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한 순간, 사진을 몇 장 넘기던 손가락이 우뚝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 날 따라 ‘둥글게 둥글게’ 노래를 부르며 같은 반 친구들과 율동을 하던 우리 진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도 잘 보여준 적이 없는 세상 밝은 웃음을 지으며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진 네 다섯 장의 사진 속엔 눈물의 이별을 하던 그와 나는 온데간데 없고, 서로 두 눈을 마주치며 행복을 지어내고 있는 그와 그녀뿐이었다. 나는 다급히 손가락을 움직여 마주잡은 손을 확대시켜 보았지만, 더더욱 확실히 보이는 그와 그녀의 꼭 맞잡은 손은 아주 찰싹 붙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어린이집에서 이제 울지도 않고 의젓하게 잘 지낸다고, 밥도 스스로 잘 먹고 낮잠도 잘 잔다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실 때부터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나 의심해봤어야 했다. 잘 보이고 싶었나 보지 뭐. 허탈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나는 그 날부터 아들을 독립시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인정하자. 이 아이는 결국 남의 남자가 될 것이다.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내 남자는 어머님의 아들뿐이다, 하고. 그리고 선생님께서 마치 내 마음을 아시기라도 한 듯이 다음날부터 올라오는 알림장에는 그와 그녀의 오붓한 모습들이 종종 보였고, ‘그래, 행복해라.’하고 나는 애써 씁쓸한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 컸다. ‘엄마,엄마’ 하며 옹알이로 나를 부르던 게 엊그제같은데. 요 놈 자식.


이왕이면 그녀를 울리지 말고, 행복하게 해줘라. 엄마가 만나봐서 아는데 여자는 그저 자신한테 한없이 다정한 남자가 최고야.


그래도 가끔은 엄마한테도 그런 웃음 보여주고, 하루에 한 번씩만 엄마 안아줘. 아직은 엄마한테는 네가 전부란 말이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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