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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18. 2023

융프라우, 잘츠부르크, 보덴호수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독일어 사용자들의 담백한 이름 짓기


독일의 지명 중에는 아주 간단한 독일어 단어들만 알아도 얼핏 그 뜻을 알아챌 수 있는 이름을 가진 곳들이 있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파헤치다 보면 누가 이름을 저렇게 담백하게 혹은 성의 없이 지었나 싶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근처의 호수에 갔는데, 그 이름이 ‘Kuhsee‘였다. ‘Kuh’는 암소이고 ‘See’는 호수니 호수 이름이 ’ 암소호수‘인 셈이었다. 또 다른 친구의 고향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동네는 ’Rohrbach‘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bach‘는 개울, 시내라는 뜻인데 ‘Rohr’도 혹시 무슨 뜻이 있냐고 물으니 갈대라고 했다. 합치면 ‘갈대시내’인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건 그냥 이름을 막지은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혹시 그 동네나 호수가 작아서 성의 없이 지은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독일어 이름을 가진 명소들 중에도 생각해 보면 이런 뜻이었어? 싶어 놀라는 이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스위스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인 ‘융프라우(Jungfrau) ‘는 독일어로 보면 ‘jung‘ 젊은과 ’frau‘ 여성이 합쳐져 ‘처녀’라는 이름을 가진 셈이었다. 또한 이름과 함께 모차르트가 떠오르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는 ‘salz’ 소금과  ‘burg’ 성, 도시가 합쳐져 의미상으로만 따지면 ‘소금성’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독일어를 쓰는 지역들을 지나다니다 보면 거리, 호수, 개울, 도시들 마다 기본적인 독일어 단어를 알면 유추해 볼 수 있는 이름들이 제법 많아서 독일어 초보자인데도 지도 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한 경우가 생긴다. 보덴제도 마찬가지다.


보덴제 (Bodensee) 역시 처음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보덴(Boden)은 독일어 기초 단계에서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데, ‘땅, 토지, 바닥’ 등을 의미한다. 마치 히말라야를 지구의 지붕이라 부르는 것처럼 보덴제라 하면 뭔가 가장 낮은, 바닥에 있는 호수인가 싶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보덴제의 히스토리를 들으면 왠지 지구, 혹은 적어도 유럽의 ‘XX’ 정도의 수식어를 들을 정도의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덴제는 무려 둘리가 태어난 빙하기 시절, 유럽의 판들이 여러 산맥과 강물줄기를 만들어내던 즈음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유럽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로 존재하고 있다.


보덴제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남쪽 끝자락의 고흥 정도에 위치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호수다. 우리나라 대전이 쏙 담길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호수의 어떤 곳은 맞은편 땅이 보이는 곳도 있지만 어떤 곳은 맞은편이 보이지 않아 마치 바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지금은 세 나라의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이 나라들이 통일되기 전 작은 공국이던 19세기까지만 해도 보덴호수를 사이에 두고 무려 5가지의 시간대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뭔가 보덴이라는 이름 안에 이 지역 사람들을 품은 땅, 반석이라는 뜻에서 보덴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게 되는데, 보덴의 의미는 사실 보덴호의 깊이에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보덴호의 Bottom, 바닥이 담은 의미는 보덴호가 다른 유럽의 거대호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얕은 수심을 가져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덴호의 중심지, 가장 깊은 곳은 약 250m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만 평균 수심은 약 90m로 이는 유럽의 다른 호수들의 평균 수심에 비해 낮은 깊이라고 한다.


이렇게 낮은 수심은 햇살이 쉽게 통과해서 호수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높이고 또한 햇살에 비치는 호숫물의 색이 산호초가 있는 바닷가처럼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을 표현한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아 호숫물의 색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여름철 보덴제를 거닐면 그라데이션이 분명한 호수의 색감 때문에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호수에도 그라데이션이 있다니


그래서 보트를 타고 아주 깊은 물가를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반 관광객들이나 호숫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될 보덴제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과 오리들도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수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래서 보덴제가 독일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연인들, 그리고 노년층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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