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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27. 2023

독일과 스위스 사이, 작지만 큰 싱엔 또는 징겐

보덴 스토리의 시작



보덴제 주변의 수많은 유명한 관광지들을 뒤로하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Singen (싱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곳이 바로 내가 2년 동안 살게 될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대다수 사용하는 N사의 포털 사이트에서 “Singen”을 검색하면 내가 가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독일어 동사의 “singen”, 노래하다의 검색 결과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아주 가끔 독일도시 싱엔이 나오면 대부분이 콘스탄츠를 가기 위해 거치는 경유지, 스위스 여행할 때 스위스의 값비싼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들리는 곳으로 나타난다. 정보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곳은 한국 사람들은 물론 독일 사람들에게도 그리 익숙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베를린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싱엔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의 독일 사람들 중 도시 이름을 듣고 한 번에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보덴제 근처이자 싱엔에서도 가까운 콘스탄츠로 이사를 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의 안색이 한결 밝아지면서 자기도 휴가로 가봤는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며 축하해 주었다.


딱 한 번 싱엔을 바로 알아채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콘스탄츠로 간다고 하니 자기가 바로 그 근처에서 자랐다고 무척 반가워 했다. 콘스탄츠와 싱엔 바로 그 중간에 있는 라돌프젤에서 나고 자란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그 주변을 너무 좋아한다고, 그 작은 마을들마다 고유한 지역축제들이 한가득인데 그걸 다른 독일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엄청 아쉬워하시는 분이셨다.


로컬 사람을 드디어 만났으니 싱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사실 콘스탄츠가 아니라 싱엔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아… 거기는 좀…”


“선생님…?^^;”


자신의 실망감이 어느새 나에게로 영향을 미친 것을 알아채고는 선생님은 나에게 싱엔에도 이런 곳이 있고 저런 행사들이 있다고 주섬주섬 추억 보따리들을 풀어놓으셨지만 이미 늦었다. 그 이후로 나는 깔끔하게 싱엔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싱엔은 예쁘지 않더라도 보덴제 주변에 예쁜 곳들은 많으니까.





싱엔은 독일과 스위스 국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라인폭포로 유명한 스위스의 샤프하우젠은 기차로 15분 걸리고, 독일의 보덴제 하면 떠올리는 콘스탄츠는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이 둘을 연결하는 기차가 바로 싱엔에 있다.


샤프하우젠과 콘스탄츠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바젤과 취리히, 독일의 프리드리히 하펜, 위버링겐, 칼스루에 등 독일과 스위스를 잇는 기차들이 멈추는 정착역이기 때문에 작은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주중과 주말 가릴 것 없이 찾아오고 떠난다.



그렇게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 잠시 들리는 곳으로만 알려진 싱엔이기도 했고, 게다가 의사선생님의 한숨 소리에 한껏 기대를 내려놓고 싱엔에 와서 인지 나는 생각보다 깔끔한 도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특히나 베를린에서 살다 와서 인지 유독 더 작게 느껴지는 동네였지만 적어도 있어야 할 것은 하나씩 꼭 있는 느낌.




먼저 싱엔에는 베를린에도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뒷산 혹은 앞산이다. 평지에 우뚝 솟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싱엔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명소 중 하나다. 기차역 이름에도 Singen 다음 가로 치고 (Hohentwiel)이라고 적혀져 있는데 이 언덕이 바로 그 이름이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닿는 언덕 꼭대기에는 Hohentwiel 요새가 있다. 무려 914년에 요새의 가장 첫 부분이 지어졌다고 하니 우리나라 국사로 따지면 무려 고려 시대 이전인 후삼국시대에 지어진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는 언덕이자 여름에는 이 요새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 언덕으로 올라가는 이유는 바로 언덕 위에서 보이는 보덴제 주변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보덴제는 물론 근처의 라돌프젤과 콘스탄츠, 날이 좋은 날엔 멀리 알프스와 블랙포레스트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꼭대기 요새에 가기 전 언덕 중턱 조금 위에 작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어서 보덴제 풍경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또한 싱엔에도 작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도 보덴제로 흐르는 작은 개울물들이 있어 주변 풍경을 더욱 시원하게 만든다. 물론 보덴제 주변 근처의 강줄기와 호수에 비교하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동네 개울이지만, 그런 물줄기조차 없는 공원과 비교하면 있어야 하는 것이 꼭 하나쯤은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하는 공원이다.



미로에 빠진 남편



또한 유럽 어느 마을이나 그렇듯 싱엔에도 도시 중심에는 교회 또는 성당이 있다. 이 가톨릭 성당 앞에는 가만히 보면 미로가 그려져 있어 한번 빠져들면 끝날 때까지 빠져나가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성당 옆에는 굉장히 친숙한 모형의 동상들이 자리한다. 유럽 박물관이나 광장 등지에서 흔히 보는 완벽한 미와 균형을 가진 동상들과는 달리 이곳의 동상은 디즈니 만화 속 조연들이지만 사실 그 동네의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로컬들을 콕 찍어낸 느낌이다. 저 실감 나는 풍채는 물론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당장이라도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표정까지,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동상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적혀있다.


성당 앞에 펼쳐지는 주말 장터에서 한 아주머니의 강아지가 계란장수 아주머니의 계란 위에 오줌을 눠서 한바탕 말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아주머니의 성난 표정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보덴제로 이사오기 전, 그 의사 선생님이 신나게 이야기해 주시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곳의 이야기엔 보덴제 지역 주변마다 가지고 있는 그 동네 요괴가 있었다. 마을마다 부활절 기간 이 전에 이런 동네마다의 코스튬을 입고 페스티벌을 한다고 했는데, 축제 기간 외에 그 동네 요괴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동상인 것 같았다. 보통 분수 주변에 같이 있는데 싱엔의 동상들은 마치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 사람들이 쳐다봐서 그 자세에서 멈추고 있는 토이스토리 인형들처럼 리얼하다. 싱엔의 요괴드을 필두로 사람들보다 더 재밌게 놀고 있는 듯한 보덴제 주변의 동상들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이렇게 싱엔에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매력들이 숨겨져 있다. 다른 보덴제 주변에 비해서는 화려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하루하루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딱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은 꼭 있는 단출한 곳. 그런데 쇼핑몰에서 만큼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싱엔 기차역을 내리면 바로 시내 중심부가 나오는데 걸어서 몇 분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바로 앞에 독일 하면 떠오르는 편의점과 슈퍼마켓들은 물론 백화점과 옷가게들까지 컴팩트하게 몰려있다.





심지어 이 작은 도시에 터키마켓, 러시아마켓, 아프간 마켓은 물론 아시아 마켓도 두 개나 자리하고 있다. 도시의 크기로만 보면 싱엔보다 인구수나 도시 면적이 월등히 큰 곳에도 아시아 마트가 없는 곳이 부지기수인데, 싱엔에는 이런 인터내셔널 한 마트가 처음부터 말한 대로 꼭 하나씩은 있는 느낌.




아쉽게도 한인마트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 라면부터 주류, 장류, 냉동식품, 쌀까지 아시아 마트에도 이제는 우리나라 음식들이 가득이다. 정말 저 세상 물가인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외국에 와서도 한국 입맛을 저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겐 한국에서부터 무겁게 이것저것 짊어지고 올 필요 없이 현지에서 필요할 때마다 한국 식품을 살 수 있다는 것 만큼이나 여행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베를린에서도 사는 곳이 멀어 매번 삼사십분을 걸려 찾아가던 아시아 마켓이 베를린보다는 훨씬 작은 동네인데 오히려 걸어서 십분 내에 있다는 것은 내가 이 낯선 도시에 금새 마음을 뺏긴 이유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싱엔 역 바로 앞에 위치해서 보덴제 근처나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가방 무게를 줄여줄 현지 꿀팁일 수도 있겠다.





그 외에도 싱엔 역 근처에는 에데카, 레베, 카우프란드, 놀마, 리들 등 다양한 슈퍼마켓들이 몰려 있는데 그 규모가 이 도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느낌이 든다.


이 작은 도시에 이렇게 다양한 슈퍼마켓들이 몰려 있는 이유는 바로 독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근처의 스위스 사람들도 이곳으로 쇼핑을 하러 오기 때문이다. 스위스 물가로 돈을 벌어 독일 물가로 장을 보는 사람들에겐 끊을 수 없는 쇼핑천국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 쇼핑센터 주차장에는 유럽연합 마크만큼이나 스위스 국기가 그려진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슈퍼마켓들이 많아서 세일을 하는 품목들이 다양하고, 특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보덴제가 속한 바덴 뷔텐부르크 지역이 독일산 와인의 최대 생산지라서 이 지역의 다양한 와인들을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싱엔이라는 도시를 알아가며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알아가는 재미가 있던 도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도시 이름이 Singen, 노래하다인 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노래와 연결된 동네일까 궁금해하다가 문득 챗gpt가 떠올라 보덴제 근처에 살며 궁금하게 생각되던 질문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사실 싱엔은 노래하다는 현대 독일어 singen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름이라고 한다. 도시 이름인 Singen은 고대 독일어 “singa”에서 따온 것이 정설로 여겨지는데 그 의미는 바로 “경사지” 또는 “산비탈”이다.


싱엔이 노래하다인 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고개가 갸우뚱했는데, 산비탈, 언덕이라는 의미를 듣고 나니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프스 산맥과 보덴제 사이에 위치한 싱엔 근처는 작은 구릉들이 넘실넘실 이어진 풍경이 가득하다.


강렬한 알프스 산들이 매콤한 맛이라면 능선으로 이어진 보덴제 주변의 구릉들은 순한 맛 산책로로 제격이다. 그리고 보덴제 품으로 풍덩 빠져들어 뜨거운 열을 식힌다면 그게 바로 이곳 사람들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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