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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16. 2023

보덴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도시, 콘스탄츠

세계사 속 콘스탄츠 공의회가 기억나다니



내가 처음 베를린에 가게 되었을 때, 베를린보다 더 신기하게 느껴진 곳이 있었는데 바로 베를린 옆에 위치한 포츠담이었다. 국사 그리고 근현대사를 좋아했던 나에겐 카이로, 얄타 , 그리고 포츠담은 뭔가 그곳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은 도시 중 하나였다.


이십 대에 내가 남아공,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강렬한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들을 주로 돌아다닌 이유인 것 같았다. 친구를 사귀고 일을 하고 공부를 모두 지구의 남반구 지역에서 하다보니 마치 그때 그 어딘지도 모르는 북반구의 도시들에서 그 유명한 인물들이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다른 요소들까지 고려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질문들을 크고 나서도 꽤나 자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카이로는 워낙 유명한 이집트의 수도이기도 하고 직접 가보기도 해서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지도 위에 찍어낼 수 있었는데, 포츠담은 이름만 들으면 그곳이 독일인지 네덜란드인지 벨기에인지 알 수 없는 이름이었고 그래서 지도에서도 특별히 찾아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포츠담이 내가 사는 베를린 바로 옆에 있었다니. 처음 포츠담에 자전거를 타고 갔던 날, 나는 오래전 중고등학교 때 읽은 근현대사 책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베를린 이후 보덴제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교과서를 떠올리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바로 콘스탄츠이다.


세계사를 좋아하면 왜인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몇몇 있는데, 예를 들면 카노사의 굴욕이나 아비뇽 유수, 그리고 콘스탄츠 공의회가 그러했다. 신과 황제의 힘을 모두 갖고 있던 절대적 교황의 중세시대가 끝나가고 유럽 여기저기서 교황들이 생겨났다가 다시 두 명, 한 명, 혹은 세 명이 되어가는 교황들의 이야기는 뭔가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상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유럽의 중세에서 르네상스, 종교개혁까지 넘어오는 과정에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지나갔지만 중세 초기, 르네상스 초기, 그리고 종교개혁 초기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도덕적인 가치들을 지나고 나면 그들이 아무리 신과 윤리와 도덕을 입에 담아도 결국 돈과 권력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다툼들인 것이 보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재밌게 읽어 넘기던 챕터였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 나름 재밌게 봤던 중세시절 드라마 한 편에 기억되던 그 콘스탄츠가 내가 살게 될 곳 근처라니.



처음 베를린에서 보덴제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본 것 중 하나는 병원이었다. 독일은 보통 하우스 닥터라고 불리는 가정의학과 주치의를 집 근처에서 찾고 난 뒤, 어딘가 아프면 그 주치의에게 먼저 가서 검진을 받은 뒤 그다음 세부적인 병원을 주치의의 진단서를 가지고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독일 어디를 가든 첫 병원 방문을 하려면 몇 개월 뒤에나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예약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보덴제 근처의 병원들은 온라인 예약 앱을 쓰는 곳이 거의 없는 듯한 것이었다. 병원 자체도 베를린에 비해 턱없이 적었지만, 그중에서도 온라인 예약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없다 보니 인터넷에서 주변 병원 검색을 하면 보통 우리 동네를 넘어 보덴제 근처의 병원들이 함께 뜨는 경험을 처음 하게 되었다.


만약 이비인후과를 가고 싶어 검색을 하면 징엔은 물론 콘스탄츠 근처까지 합쳐도 열 군데가 채 되지 않는 클리닉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는데, 그중 한 곳이 온라인 홈페이지는 물론 온라인 예약까지 받는 곳이 있었다. 이런 편의를 봐주는 친절한 의사가 있다니 싶어 부리나케 온라인 예약을 하려고 봤는데 심지어는 당장 이번 달 안에 방문할 수 있는 날짜까지 넉넉하게 가능한 것이 아닌가.


독일에서라면 이럴 일이 없을 텐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홈페이지를 두루 살펴보는데, 병원이 콘스탄스이긴 한데 스위스 지역의 콘스탄츠였다. 그날 나는 콘스탄츠의 절반은 독일에, 나머지 절반은 스위스에 위치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보덴제의 큰 지도를 보면 보덴제 사이에 기다랗게 선이 세 개로 구분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북쪽은 대부분이 독일에 속하고, 서남쪽은 스위스, 그리고 가장 남동쪽에 오스트리아가 자리 잡고 있다. 서북쪽에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이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지역이 있는데, 북쪽은 독일의 콘스탄츠 (Constance), 남쪽은 스위스의 크로이츠링겐 (Kreuzlingen) 나뉘어 있어서 보덴제가 그 둘의 경계를 나누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보덴제 지도에서 콘스탄츠 지역을 다시 확대해 보면 콘스탄츠가 사실 스위스 국경에 걸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자연적으로 생긴 국경이라면 산맥이나 사막, 강과 바다 등 자연의 끊어짐으로 인해 발생하기 쉬운데, 그렇게 따지만 콘스탄츠는 오히려 스위스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위치이긴 했다.


우리가 보통 콘스탄츠에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머물게 되는 콘스탄츠의 올드 타운 지역은 반도형태로 툭 튀어나온 독일의 Peterhausen에서 호수를 건너 스위스까지 이어진 다리가 연결된 지역을 콘스탄츠로 하고 독일 영토에 포함되었다. 사실 스위스라고 해도 거의 무방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세계 2차 대전 중에는 스위스와 함께 밤에는 불을 밝게 비춰 콘스탄츠 역시 중립국인 스위스와 함께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 특유의 지리적 특성상 스위스와 독일 사이에서 어디에 편입이 될 것인지가 콘스탄츠의 역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징엔에서 콘스탄츠까지는 기차로 약 25-30분 정도가 걸린다. 콘스탄츠 기차역은 기찻길이 계속 이어져 있음에도 모든 승객들이 내려야 하는 독일 기찻길 종착역 중 한 곳이다. 콘스탄츠 다음역은 스위스이기 때문이다.


취리히나 루체른처럼 종착역이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가 아닌 이상 콘스탄츠역 이후는 스위스 지역이라 독일 기차들은 보통 여기서 기차가 끝이 난다.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기차역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관광지 마을 느낌을 풍긴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지하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올드타운 시내, 오른쪽에는 보덴제가 바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보덴제 쪽으로 나서면 보덴제 주위에 위치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지역의 항구들로 항해하는 페리 선착장이 나타난다. 정해진 시간마다 성수기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에 미리 선착장에 가서 표를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그 선착장 바로 맞은편에 세계사 속 콘스탄츠 공의회가 열렸던 그 건물이 여전히 서있다. 지금은 음식점과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이렇게 푸른 호수 앞에서 세계사에서도 오르내리는 중세 교황들의 미래를 결정했다니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지도 모르게 지금까지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려 사용되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통통보트를 굴리기도 하고 아이들은 시원한 호수물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한다. 올드타운 지역의 콘스탄츠도 크고 작은 페리가 많이 다녀서인지 수영은 금지된 듯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선착장에는 콘스탄츠의 명소라 불리는 임페리아 동상이 바로 앞에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한 손 위에는 황제와 다른 한 손 위에는 교황을 올려둔 임페리아라는 여성 동상은 콘스탄츠 공의회를 풍자했다고 하는데, 동상은 천천히 360도를 회전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이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다.



동상 맞은편에는 오래된 등대가 있는데, 등대 너머의 풍경은 다른 보덴제 항구들과는 달리 어떤 언덕이나 산이 보이지 않아 이곳이 정말 호수가 아니라 바다가 아닐까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호숫가를 뒤로 하고 올드타운으로 걸어 들어오면 보덴제 근처의 도시 중에서는 가장 길고 큰 듯한 올드타운 거리가 나타난다.



광장 중앙에는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귀여운 캐릭터들의 분수가 있다. 목마를 탈 수 있는 동상부터 백설공주 만화 속 귀여운 동물들이 동상이 된 듯한 아이들까지, 동상 하나하나가 무척 귀엽다.



독일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데엠(dm)인데, 데엠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싶게 꽃뭉텅이가 입구를 장식한다.



올드타운 골목 사이사이를 이렇게 건물색과 어울리는 색감의 꽃다발 뭉치가 매달려 장식되어 있다. 덕분에 도시 전체가 왠지 은은한 결혼식장인 느낌.



독일 북쪽에 있는 베를린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반짝이는 태양 간판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한여름의 콘스탄츠.



골목들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독일을 넘어 스위스로 넘어가는 수도 있다. 물론 국경지역엔 검문소가 있어 내가 지금 독일에 있는지, 스위스에 있는지 인지할 순 있다. 말로는 반도지만 사실상 섬에 가까운 우리나라이다 보니,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걷다 보니 웁스, 국경을 넘었네 싶은 상황들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험할 때마다 여전히 신기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한낮의 쨍쨍한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에는 필터를 살짝 끼우면 왠지 지중해 마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색감들이 나타난다.  콘스탄츠 올드타운엔 이런 골목들이 가득하니 조금 여유 있게 다양한 시간을 가지고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공주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성당의 핑크색 시계탑. 콘스탄츠를 찬찬히 살펴보며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이 도시는 색감의 도시인 것 같다. 누가 색을 고르는지 참 예쁘게도 잘 선택했다.



노을질 무렵, 노을까지 도시의 배경색으로 함께 녹여버리는 풍경.



왜 사람들이 보덴제 하면 가장 먼저 콘스탄츠를 떠올리는지 알 것 같은 여름날 반짝이는 콘스탄츠 올드타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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