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어디에
가을을 한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독일. 벌써 4번이나 마주한 독일 겨울 날씨인데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 2주 내내 한결같이 흐린 하늘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흐릴 수 있는지. 이런 날씨에 놀란 건지, 이런 날씨를 네 번이나 보내고도 여전히 적응 못하는 나에게 놀란 건지 모를 일이다.
하긴, 독일에서 나고 자란 독일 친구들도 여전히 이런 흐린 겨울 날씨엔 적응하기 어렵다는데 이제 갓 다섯 해를 지내는 내가 벌써 적응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그렇게 아무리 커튼을 거둬도 해 뜰 녘인지 해 질 녘인 분간할 수 없는 날들을 2주나 보내고 난 뒤, 나는 답을 하기 어려운 또 다른 질문과 마주했다. 과연 영국의 날씨가 더 나쁠까 독일의 날씨가 더 나쁠까. 아무리 유럽에 오래 산 사람들이라도 영국과 독일 사이의 음식만큼이나 답하기 어려운 날씨에 대한 질문의 답이었다. 적어도 2023년 12월 크리스마스 전 주의 런던과 베를린의 날씨를 비교한다면 런던의 날씨가 조금 더 좋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유럽 사람들의 겨울 여행은 그 흐린 날씨들을 피해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나는 독일에서 영국으로 가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어 처음으로 가는 영국 여행인데도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여행을 가는데 이렇게 감흥이 없다니 무슨 일일까.
비행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흐리고 깊은 안개 때문에 한 시간이나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렇게 모든 빛을 삼켜버린 구름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마치 길을 잃은 사람처럼 비행기는 깊은 안갯속을 한참이나 뚫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나 깊은 구름이 덮고 있어서 2주가 넘게 해를 보지 못했구나 싶던 순간,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아니 구름이 하나 가득 아래로 덮인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
문득 내 생각에도 이 구름들이 가득 채워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보는 하늘이 언제나 구름에 덮여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해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어차피 독일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그러면 거의 세네달은 날이 언제나 흐릴건데, 차라리 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마음을 편하게 만들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샌가부터 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해가 정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알아채지 못하던 즈음, 구름 위 푸른 하늘과 환한 태양을 만났다. 사실 태양은 언제나 그 위에 있었는데 말이다.
한참 하늘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속삭였다. 희망 같은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듯한 날들 중에도 사실 그 위에는 언제나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지금 보이지 않을 뿐, 없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영국이고 독일이고 어딜 가나 피할 수 없는 흐린 날씨처럼 느껴지는 곳, 순간에도 빛은 언제나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고 있다고. 내 마음 한편에 깊은 한 줄기 빛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