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덴 호수의 삼거리, 프리드리히 하펜
보덴 호수를 보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먼저 보덴호수를 설명하기 위해 머릿속에 지도를 한 장 펴보자. 지하철 노선도가 서울의 실제적인 지역들을 추상화하여 가장 간단하게 길을 표현한 것처럼 보덴 호수도 간단하게 그려볼 것이다.
이제 서울 지하철 2호선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왜냐하면 신기하게도 서울의 면적이 약 600k㎡라면 보덴호수의 면적이 약 540k㎡라서 기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을 생각해 보니 얼추 지하철 2호선의 이동시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동그란 지하철 노선도 안에 보덴 호수가 있고, 그 호숫가를 따라 기찻길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자. 대림에서 잠실까지 정도가 독일 영토라고 한다면, 잠실에서 강남 정도는 오스트리아 영토, 강남에서 대림까지는 스위스 영토라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보덴호수에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나라 사이를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도시.
보덴호수 중에서도 독일 지역에 위치한 마을 혹은 도시들 중 오늘 떠날 도시는 프리드리히 하펜(Friedlich Hafen)이다. 프리드리히 하펜은 대림에서 잠실까지 거리 중 건대입구 정도에 위치한, 보덴 호수의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프리드리히 하펜(Friedrichshafen)이라는 도시 이름은 19세기 초반 보덴 호수의 대부분을 다스리고 있었던 바덴 뷔텐부르크 공국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Friedrich) 1세의 이름과 항구(하펜, Hafen)를 결합해 만들 졌다.
특별히 이 도시를 처음 안내하게 된 이유는 이곳이 보덴호수 주변에 위치한 도시들 중 접근성이 가장 높은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개인 자가용을 타고 오면 어디서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보덴호의 어느 공간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배낭 하나 메고 49유로짜리 도이치란드 카드를 사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여행자의 경우, 독일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 보덴호수를 들어가고 나가는 동안에 한 번쯤은 꼭 거치게 될 도시가 바로 프리드리히 하펜이다.
보덴호수로 향하는 기차들이 만나는 삼거리
프리드리히 하펜에 오기 위해서는 자동차, 기차, 페리, 심지어 비행기까지 탈 수 있지만 가장 먼저 나는 기차를 추천한다. 물론 아쉽게도 독일의 가장 큰 도시라고 손꼽을 수 있는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도시들에서 보덴호수로 오는 직항 기차가 없다는 것은 함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보덴 호수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진 대도시는 스위스의 취리히다). 이 거대한 도시들은 신기하게도 독일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가장 반대쪽에 위치해 있는데, 아쉽게도 보덴 호수 역시 극단적으로 독일 서남쪽 끝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을 어렵게 하는데 한몫한다.
위의 도시들에서 보덴호수 지역으로 오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춘천, 부산, 파주, 전주에서 목포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한데 그 거리를 두세 배 정도 길게 늘이면 독일의 다른 대도시에서 보덴 호수로 오는 시간도 얼추 비슷해진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면적이 약 1004만 헥타르인데 독일의 면적이 약 3575만 헥타르라고 하니, 베를린과 보덴호수 지역의 거리가 강원도 춘천에서 전남 목포까지의 거리처럼 보여 대략 5-6 시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는 10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와야 하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독일이 미국이나 중국보다는 작은 나라이겠지만, 한국보다는 몇 배나 크다 보니 보덴 호수가 속해 있는 바덴 뷔텐부르크 주나 이웃 주인 바이에른 주에서 출발하지 않는 이상 이곳까지 바로 오는 직행 기차는 없어서 어디서 출발하든 한두 번은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이렇게 독일의 다양한 지역에서 들어오는 기차들이 보덴호수 지역에서 한 번 만나는 입구가 바로 프리드리히 하펜 기차역이다. 먼저 동북쪽에서 내려오는 기차들이 울름(Ulm)에서 한 번 멈추고, 그곳에서 프리드리히 하펜 도시로 들어오는 기차가 하나 있다. 두 번째는 뮌헨 지역에서 출발해 보덴호수 독일 지역 중 가장 남쪽인 린다우(Lindau)에 도착한 뒤, 린다우 남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기차들과 함께 보덴호수 북쪽으로 올라오는 기차가 만나는 곳이 프리드리히 하펜역이다. 세 번째로는 보덴호수 북쪽에 위치한 콘스탄츠, 그 뒤로 이어지는 스위스의 샤프하우젠과 바젤까지 이어지는 기차가 독일 동남쪽으로 지나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프리드리히 하펜역이다.
이렇게 세 개의 기차 라인이 만나는 곳이 프리드리히 하펜 역이다 보니 굉장히 규모가 큰 기차역이 아닐까 싶겠지만 막상 기차역사 자체는 순천역이나 목포역 정도의 중소규모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단위면적 당 그 위에 쌓인 발자국만큼은 성수기에는 베를린 중앙역 부럽지 않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을지 모른다. 프리드리히 하펜 역은 보덴 호수의 다양한 방향에서 들어오는 기차들이 한 번씩 정차하는 역이면서 동시에 독일이나 다른 나라에서 출발하여 프리드리히 하펜으로 오는 플릭스 (Flix) 버스의 경우에도 승하차장이 대부분 기차역 앞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로 연결된 페리들이 떠나는 선착장도 기차역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여러모로 기차역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내가 보덴 호수 주변 기차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어떤 기차든지 보덴호수 주변을 따라 떠나는 기차라면 차창 밖 풍경이 평화롭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독일 영토 안의 기찻길은 단언컨대 호수에 가장 가깝게 달리는 물체가 아닐까 싶다. 호수의 물이 많을 때는 호수 표면 위로 기차가 달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 때도 있고, 호수와 기차를 타고 있는 나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하면 물과 백조, 요트뿐이 아닐까 싶은 공간을 지나가기도 한다. 기찻길이 아니라 호숫가를 따라 기차를 놓은 건 아닐까 싶은 기차밖 풍경을 한번 보게 되면 제 아무리 재미있는 숏폼을 보고 있더라도 핸드폰을 놓고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찻길이 바로 이 루트이다.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콘스탄츠까지 이어지는 호숫가 기찻길 루트는 추천하는 여행루트이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나라를 오가는 페리가 모이는 항구
또한 프리드리히 하펜이 보덴호수 지역 교통의 요지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항구의 페리 덕분이다. 겨울 비수기에는 운행하지 않지만, 보덴호수의 빛이 푸르러지는 4월부터 프리드리히 하펜의 항구는 보덴호수의 어느 항구보다 더 자주 국경을 오가는 배들로 넘쳐난다.
프리드리히 하펜 항구에서는 보덴 호수에 위치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가장 큰 도시들로 오가는 페리가 운항되는데 오스트리아의 브리겐츠 (Bregenz), 스위스의 로만스호른 (Romanshorn), 그리고 독일의 콘스탄츠(Konstanz) 등 보덴호수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들이 바로 그 정착지이다. 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호수 주변이 아니라 아예 푸른 호수에 풍덩 빠져 파아란 호수를 여유롭게 가로질러 가장 빨리, 많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페리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기차와 페리와 더불어 프리드리히 하펜 주변의 보덴 호수 풍경을 아주 비싸지만 누구보다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물론 날씨가 정말 정말 좋은 날에만 가능한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방법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