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쫓아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오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언제부턴가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는 무조건 복도석 앞자리였는데 오늘은 일부러 창가를 택했다. 뭔가 하나라도 더 담아두고 싶은 듯이. 해가 지며 주황빛으로 물드는 제주 땅을 보자니 왠지 콧등이 시큰했다.
참 이상하게 비행기를 타면 탈수록 점점 무서워졌었다. 기류에 조금 흔들하기만 해도 이러다 떨어지면 어쩌지, 바다에 떨어지는 게 생존율이 높을까 아닐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곤 했는데 아이고- 이제 이것도 끝이겠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오십여분의 비행 내내 재잘재잘, 여행의 설렘에 들뜬 여자아이들의 수다를 들으니 한편 짜증이 나면서도 다음에 제주에 올 땐 나도 저런 기분이겠지 싶어 곧 누그러지더라.
여러모로 묘한 오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스치는 풍경 하나하나가 얼마나 아쉽고 짠하던지, 참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구나 싶었다. 갑자기 실감이 났달까.
제주에 오고 결혼을 하면서 인생 2막을 연다고 표현했던 예전 포스팅을 다시 읽었다. 그럼 이제 3막인가? 뭐, 생활의 터전이 바뀌는 것 외에도 큰 변화가 생기긴 하니까 그렇게 말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보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가올 도전이 두렵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지금껏 그래 왔듯 또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말하게 될 거라 믿는다. 며칠 후 정말 떠나게 될 땐 또 얼마나 감상에 젖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