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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언니 Apr 08. 2021

글문이 막힌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수첩 속 처방전


잠시 내 머릿속에 구름이 만들어졌다 흩어졌다 하는 것처럼 생각이 뭉글뭉글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일주일의 숙성기간이 지나도 정리되지 않는 나의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온전히 적어 볼 수 있을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 꾸준히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겠다고 다짐 한지 겨우 한 달. 그 이유마저도 글로 표현하기 힘든 슬럼프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사실 이유를 아는데 말로도 소리내기 힘들다고 느껴요. 입이 간질간질한데 도저히 소리가 나지 않는 꿈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순간처럼요. 그래서 나에게 조용한 처방을 내린 것이 책을 좀 더 천천히 읽는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공부라고 하면 단박에 질릴 것 같아서 책이나 자료를 천천히 읽어 보란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에요.


글쓰기에 관해 이런저런 꿀팁이 담긴 책과 강연이 많지만 그중에서 저는 독서와 공부 그리고 글쓰기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유시민 작가님의 강연과 공감 필법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강연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라 강연과 책의 내용이 비슷해요. 몇 년 전 오늘과 같은 진단이 내려지는 날을 위해 강연에서 들은 건지 책에서 추린 것인지 모를 비밀 수첩에 적어놓은 처방들을 옮겨봅니다.






글쓰기는 이렇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살아가면서 자기가 느끼게 되는 감정이나 자기가 하게 된 생각을 자기 손으로 문자에 심어 보는 것, 문자로 표현하는 것, 그게 저는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자로 표현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독서를 하던 하던 다른 공부를 하던 생각을 하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다고 내가 믿는 생각과 감정 이게 사실 내 것이 아니에요. 문자로 정리하기까지 문자로 정리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은 진짜 생각과 감정이라는 증거가 없어요. 우리가 처음에 생각과 감정이 있고 이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글이다 말이다 이렇게 믿지만 실제로는 생각과 감정이 언어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요. 언어의 도움이 없으면 생각을 못해요.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이게 뭐지라고 말하려면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하죠. 이게 분노 사랑 연민 복수심 뭐든 내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내가 뭔지를 직시하려면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야만 그게 먼지 알 수가 있어요. 내가 나 자신을 잘 이해하려면 내가 어떤 책을 읽어서 어떤 경험을 해서 어떤 방송을 봐서 내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진짜 내 생각인 줄 알려면 문자로 표현해봐야 됩니다. 그것을 어떤 어휘에 담아내지 못하고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메시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내 것이 아니에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책 속에 심어놓은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와 인간과 나 자신을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 한 면이고, 그렇게 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문자로 옮기는 글쓰기는 공부의 다른 면입니다. 세상을 대하고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을 정할 때,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활용해요. 그러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바뀌며, 감정과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집니다.





공부에는 반드시 글쓰기가 같이 가야 됩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어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현재 쓸 수 있는 수준에서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과 이 순간 내  머릿속을 사로잡은 생각을 문자로 표현해 보는 거에요. 이것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어느 시점에서 다른 사람이 읽고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을 느낄만한 완전한 형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과 없이 책을 읽는 것은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 나게 됩니다.





글쓰기는 공부의 결과로 생기는 능력이 아니고  글쓰기는 공부의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경험, 오감으로 직접 체험하는 것,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 그 밖의 기타 등등의 방식으로 세계에서 타인에 의해서 문자 텍스트에서 정보, 지식, 생각, 감정을 내가 읽어 내고 그것과 교감하거나 공감하거나 또는 그것과 대립하거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내가 세계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나만의 어떤 시야 또는 접근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에요. 그 공부에서 항상 뱅뱅 돌아가는 과정에서 한 단계 바뜨리고 넘어가는 게 이게 글쓰기예요. 글쓰기는 공부가 많이 되고 독서가 많이 되어야 이뤄지는 게 아니고요. 각각의 공부의 수준에서 그 수준의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수준을 올리고 싶다면 그 단계에서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문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표현해 보아야 그 어휘가 내 것이 됩니다. 내 장기기억장치 속에 보관이 되고요 쉽게 상실되지 않고요. 다음에 출력해서 또 쓸 수 있고 거기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시작했으니 젠가 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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