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영업/세일즈 컬럼 기업영업교육전문가 박주민 대표
흔히 개인고객을 상대로 하는 B2C 영업이나 규모가 작은 소형 세일즈에서 계약을 잘 마무리하는 영업사원을 일컬어 클로저(closer)라 하고 그러한 영업행위를 클로징(closing)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고객과의 계약을 잘 종결짓는 역량을 말하는데 영업 프로세스 중 매우 중요한 역량임에도 생각보다 어려워하는 영역이라 클로징을 잘 못하는 영업사원들이 많다. (필자는 B2C 영업자를 영업사원으로 B2B 영업자를 영업대표로 구분해 표기한다) 그런데 클로징을 잘하는 영업사원들의 성향을 보면 대체적으로 성격도 밝고 적극적이며 말을 잘한다. 그렇다면 기업을 상대로 하는 비교적 대형 규모의 B2B 영업에서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성향의 영업대표들은 클로징에 별 도움이 안된다. 심한 경우 다 만들어 놓은 영업 기회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근거로 SPIN 세일즈의 주창자인 닐라컴의 연구들 중에는 클로징 기술의 효과성과 구매 결정 규모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것들이 있는데 주로 소형 규모의 세일즈에선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클로징이 효과를 보았지만 대형 규모의 세일즈에서는 그러한 클로징이 오히려 세일즈 성공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방금 전 말한 영업 성과와 관련된 영업대표 성격에 관한 연구결과들이 나오기전까지 꽤 오랜 시간 많은 오해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속으로는 샌님 같은 영업대표들을 보면서 ‘저들이 영업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영업계약을 잘하려면 아무래도 성격이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정관념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들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 건 큰 계약건들을 쏙쏙 마무리 짓는 동료 선후배들 중 상당수가 내성적이며 말수가 없음을 목격한 후부터였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영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이렇듯 성공적인 클로징을 잘할 수 있었던걸까? 우선,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경영학 교수이자 미국 최고의 사회심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담 그랜트(Adam Grant) 교수의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일즈와 관련한 그의 연구에서도 최소한 외향적인 사람들이 영업 실적과 큰 상관관계가 없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랜트는 콜센터를 운영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자료를 수집했는데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외향적인 영업사원이나 내향적인 영업사원이나 영업 실적에 있어서 신통치 않았던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볼 것이 하나 있었는데 외향성과 내향성 두 성향을 모두 가진 양향적인 영업사원의 실적이 가장 높게 나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중도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다른 연구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영업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건의 연구를 실시했는데 여기에서는 사교성이 평균보다 낮은 사람들의 실적이 가장 좋게 나왔으며 오히려 사교성이 평균보다 높은 그러니까 외향적인 사람들의 실적이 종종 가장 낮게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연하기를 외향적인 사람들의 경우 말이 너무 많고 상대에게 귀 기울이지 않아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즉, 주장을 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지 못해 지나치게 강요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고객들을 도망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 정도의 유추는 가능해졌다. 즉,'내성적이며 말수가 없는 영업대표들이 대형 세일즈에서 클로징을 잘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균형감을 가지고 고객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기 때문이다.’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영업대표들이 왜 하필 클로징 단계에서 유독 빛을 발하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형 세일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구매 계약 전 발생하는 고객의 불안 심리를 잘 관리하는 데에 있다. 만일 당신이 회사에서 대량의 컴퓨터를 교체하는 임무를 맡은 구매담당자라 하자. 우선적으로는 호환성을 고려하여 웬만하면 기존 업체와의 연장계약 진행을 생각하고 있지만 노후화된 컴퓨터의 보상판매 조건이 우수하다면 공급업자의 교체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그래서 몇몇 예비 공급업자들로부터 기술사양서와 견적서를 받았고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제시한 신규 공급업체와 계약하기로 거의 가닥이 잡혀 졌다. 그런데 당신은 최종 구매 계약을 앞두고 여러가지 걱정거리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냥 기존 업체와 재계약하는 게 낫지 않을까?”“새로 바뀐 업체의 담당자는 처음만 잘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불성실해지는 건 아니겠지?”“나중에 기존 업체를 왜 바꾸었냐고 위에서 뭐라하면 어쩌나”등 쓸데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급기야 당신은 조만간 있을 조직변경을 앞두고 컴퓨터 구매일정을 연기하는 것까지 고려한다. 대량 구매에 대한 책임도 덜 수 있고 무엇보다 혹시 모를 구매 이후에 발생될 직원들의 불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이러한 상황들은 실제 구매현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대다수의 대형 계약을 앞둔 구매자들은 구매에 따른 내부적인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업대표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섬세하고 노련한 영업대표는 최종적인 구매를 앞둔 고객에 대해 더욱 세심한 관찰을 기울인다. 필자의 경우에도 최근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이도 해당 담당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불안 요소를 말해주어서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매우 긍정적인 케이스에 해당하지만 드물게 나타나며 그렇기에 경험 많은 영업대표들 조차도 고객의 불안 징후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공급업체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고객은 솔직하게 자신의 불안을 털어놓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객은 보통 심리적으로는 구매를 미루고 싶을 경우 다양한 형태로 불안 신호를 보내온다. 대표적인 게 뚜렷한 이유나 해명 없이 구매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도 돌아오는 답변은 내부 사정이라며 에둘러 표현한다. 다음으로 가장 잘 구별해야 하는 것이 가격에 대한 저항이다. 실제 저항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분하는 방법은 문제제기한 가격 저항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반대일 경우엔 구매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싶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만남을 기피하거나 요청한 정보 제공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모든 불안의 요소가 최종 구매 계약 전 발생할 수 있는 고객의 심리문제인 것이지 실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영업대표가 섣불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 자칫 고객으로 하여금 압박처럼 느껴져 반발심과 거부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는 뒷걸음질치고 싶은데 “제 생각에는 지금 발주를 해야 상반기안에 셋팅이 완료됩니다”하는 식일 경우가 그렇다. 굳이 필요하다면 조심스럽게 구매 지연의 이유를 묻는 게 차라리 낫다. 하지만 그것도 이 단계에서 구매를 일으키는 특효약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호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법은 없는 걸까?
이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운데 독자들에게 다소 힘빠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최종 구매 계약 전 고객의 불안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영업 초기부터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잘 구축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신뢰관계 구축에 필요한 핵심적 요소는 영업대표가 고객의 말에 진실되게 공감해주고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는 감정적 배려에 달려있다. 이는, 너무 적극적이고 스마트 하기만 하며 말이 많고 경청하지 않는 영업대표가 감당하기엔 매우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일즈의 사이클이 길고 구매 전후를 포함한 내부적 위험이 큰 대형 B2B 영업에선 영업대표의 섬세한 태도가 최종 구매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결국, 고객은 자신들을 위해 집중해주는 진실되며 믿음이 가는 영업대표에게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는 전문가 영업대표의 이상적인 모델이 ‘다양한 캐릭터의 연출이 가능한’‘섬세한 고객의 주치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생각해 보자. 영업초기 새로운 고객과의 첫 접촉이 시작될 때에는 영업대표의 모습이 내향적이면 곤란하다. 통찰을 담아 자신 있게 자신의 전문가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영업 상담이 시작될 때에는 고객의 니즈와 문제를 잘 듣고 파악해 이를 확장하고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에는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냉철함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예상치 못한 고객의 요구나 질문에는 당황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또 창의적으로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영업대표는 영업초기 단계에서 클로징 단계로 갈수록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부터 시작해 진실되게 공감하고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태도로의 단계적 심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섣불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고객의 최종 구매 단계 전후에 나타나는 고객의 불안 증상은 대응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영업초기에 영업대표가 제대로 역할 수행을 하지 못한 관계로 나타난 결과물로 봐야 한다. 이 장을 소개하면서 다소 불편했던 점은 명쾌한 대응 방법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없음이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이 장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클로징 단계에서 계약으로 잘 이끄는 영업대표의 성격 유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곧 균형감을 가지고 고객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말수는 적으나 세심하고 배려가 넘치는 유형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유형은 클로징 시점이 아닌 영업초기 고객과의 사이에서 맺어지는 신뢰구축 과정에서부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신뢰의 핵심은 고객에 대한 영업대표의 진심어린 관심과 귀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에 달려 있는데 이것을 잘 할 수 있는 영업대표라면 고객은 스스로 당신에게 불안 요소를 미리 고백하고 최종적인 구매 계약을 요청해 올 것이다.
I pray for peace in Ukr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