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엔 언제나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예성의 정규 1집에는 예성의 어머니를 위한
'그대에게 (Mother)'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사실 난 엄마에게 늘 감사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대에게 (Mother)'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굉장히 잘 담겨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시적인 표현으로 잘 담았을까 싶었다.
꼭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꽃다운 계절은
나 하나만 보며 저문 거죠
고왔던 그 시간들과
다 바꿔서 나를 피워 낸 그대
항상 다 주고 더 주고 싶다는
그대 땜에 내가 살아요'
도입부 가사를 보는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꽃다운 시절을
나 하나만 바라보며 보냈었는데..
엄마 생각하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나는 평범한 가정의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각별하다.
엄마와 나는 내가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오로지 우리 둘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는 그 순간에도
어린 나이에 혼자서 그 고통을 감내하셨다.
당시 출산예정일보다 며칠 이른 시기인
12월 25일에 진통이 느껴져서 혼자 병원에 가셨는데
크리스마스 연휴 탓에 의사도 교회 가고 없던 때라
복도에서 급하게 간호사들과 출산을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나오자마자 울음이 터지지 않았던
심각한 상황이라 소아과 의사가 오고 난리였다고 한다.
그 당시 엄마가 꿈속에서 어린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서자마자 대문이 쾅 닫혔다고 한다.
이 꿈이 예지몽이었을까.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했던 부모님의 관계는
나의 출생과 동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 이후 엄마는 갓 태어난 어린 나를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친정으로 가셨다.
엄마는 그렇게 혼자서 일하며
부모님을 모시며 나를 혼자 키우셨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퇴근 후 꼭 가야 하는 회식자리
이외에는 어린 나를 위해서 다른 개인약속은
철저히 안 가시고 무조건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나이 20-30대였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즐거운 일이 많은 나이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가장이 되어 혼자서 딸인 나를 키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어릴 때 나를 데리고 나왔을 때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난 그저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철없이 자라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어린 나이부터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만 했던
엄마의 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모든 진실은 평화로운 주말아침에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막장드라마를 재밌게 보던 중
엄마가 갑자기 우리 집에 있었던 일을 얘기를 해주었다.
왜 아버지와 내가 태어나자마자 헤어지셨는지.
아마 당시의 내가 다 컸다는 판단을 하셔서
뒤늦게나마 얘기를 꺼내신 듯했다.
엄마가 해준 얘기는 보고 있던 드라마 내용 그대로였다.
이렇게 충격적인 이유로 갈라섰는지 몰랐다.
그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졌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상상도 못 한 아주 큰일이 있었다.
드라마에 나올법한 그 일을 엄마는 겨우 20대에 겪었다.
나는 행복하게 자랐으면 해서 데리고 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그 나이에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뒤로한 채 나만 보고 사셨다.
'이후 엄마와 나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동화 속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린 내가 30대까지도 정말 힘들게 살았다.
이제 막 40대가 된 지금이 되어서야
엄마와 나 둘이서 서로 이제 좀 편하다.
인생이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 하고 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 엄마는 벌써 칠순이 되셨다.
'너무 빨리 가지 마요
돌려줘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어떡해서든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우리는 다시 우리여야 해요'
이 가사가 지금 내 마음과 같았다.
엄마에게 돌려줘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청춘이 다 고생하며 보낸 엄마는
이제 이미 칠순 할머니가 되셨다.
이제야 같이 여행도 가며 즐거운걸
마음껏 누릴 수 있는데 한 해가 지날수록
체력이 약해져서 힘들어하신다.
갈수록 아픈 곳도 늘어나서
점점 병원도 많이 가시게 되었다.
엄마의 시계는 유난히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조금만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엄마가 벌써 칠순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꿈 많던 그대가 내가 꿈이라네요
영원히 서로의 품에 살아요 우리
그대의 자랑이 되어줄게요
나의 이름을 처음 불러준 그대에게
내가 더 사랑하고, 할게
그대가 날 보고 웃네요'
모든 어머니의 꿈은 자식인가 보다
엄마의 꿈도 늘 내가 잘되는 것이었다.
본인이 누리지 못하고 산 것을
나는 행복하게 다 누리고 살기를 기도하며 사셨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이 아닌데도
난 평생 엄마의 자랑이다.
힘들게 사느라 많은 것을 해드리지 못했는데도
엄마는 늘 주변에 우리 딸이 최고라고 말씀하신다.
엄마가 부디 아프지 않고 오래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엄마와 나에게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