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보고 싶은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
예성의 미니 5집 수록곡
Silhouette를 들을 때면 항상 궁금했다.
노래 속에서 보고 싶고 그리운 실루엣은 누굴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어릴 때 내 곁을 떠나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보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안 돼'
후렴구 가사 중 이 부분을 들을 때면
항상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가사처럼 보고 싶은데 마음처럼 볼 수 없고
멀리서 그저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와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각별한 것만큼이나
할아버지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이였다.
할아버지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으셨던 터라
먼저 태어난 손녀 손자에게 애정을 주진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자 달라지셨다.
엄마에게 이상하게 나는 너무 예쁘다며 좋아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엄마와 나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평소 무뚝뚝해서 애정표현도 못하셨던 할아버지였지만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딸이 가여워 마음 아파하셨다.
엄마가 혼자 힘들지 않도록 함께 살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고
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셨다.
엄마가 생계를 위해 직장에 출근하시고
늘 바빴던 할머니도 외출하시고 나면
하루 종일 나와 할아버지 둘만의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때론 2층 베란다에서
물을 틀어놓고 물놀이도 하게 해 주시고
비디오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영화도 빌려 함께 봤다.
때로는 어린 나를 데리고 영화관 가셨는데
어김없이 영화가 끝날 땐 항상 옆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광안리 고모할머니댁에
가실 때마다 늘 나를 데리고 함께 가셨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 자전거를 사주시고
계란프라이에서 노른자만 먹는 손녀를 위해
식사할 때마다 본인의 노른자를 기꺼이 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어딜 가든 늘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영원히 할아버지와 이대로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9살이 되던 해 여느 때처럼 학교를 다녀와
2층 할아버지방으로 갔을 때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셨다.
그래서 굳이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고
혼자 귓가에 대고 인사만 하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왔다.
피아노학원을 다녀와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2층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넘어지셨다.
다시 급하게 내려와서 전화를 돌리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 전화를 받고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울음을 터트리셨다.
엄마 나이 겨우 38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실감하지 못했고 다시 못 본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다들 나를 안쓰럽게 보는데
왜 그렇게 슬프게 보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저 온 동네가 떠들썩했고
어른들은 계속 울고만 계셨다.
나와 엄마에게 기둥이 되어주시던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엄마에겐 든든한 지원자였던 아버지였고
나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이자
비어있었던 아버지 자리를 채워주셨다.
항상 아버지가 되어주신 할아버지와의 이별로
9살이었던 나는 진짜 아버지를 잃었다.
'A mysterious silhouette
보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안 돼
Just looking at the silhouette
여기 있는데 가질 수가 없는 게
Just stop making fun of me
Just don't look for me today'
할아버지가 떠나신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할아버지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처럼 새겨져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젠 점점 희미해진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려 봐도
이상하게 할아버지의 얼굴만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젠 할아버지의 일상 속 늘 보던 표정과
행복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점점 흐려지고
실루엣만 남듯 그림자 같은 모습만 남아 있다.
진짜 조금만 더 떠올리면 선명해질 것만 같은데
그 기억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가사처럼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
이젠 소중한 기억조차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아직도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
다시 그날의 순간들을 되감아 보지만
Slow motion으로 느낄수록 더 공허해지는 밤
네가 돌아오기만 매번 기다리는 나
Now I can see nothing'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난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지만
이상하게 그날 누워계시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주무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귓속말로 인사를 할 게 아니라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워라도 볼걸 그랬다.
그랬으면 계속 내 곁에 계시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때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공허하고 헛헛한 마음만이 남아 있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 얼굴이 흐려지고
희미하게 실루엣만 남는다는 건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그날의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행복한 추억만 간직하라는 할아버지의 뜻이 아닐까
예성의 Silhouette은
더 이상 슬프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마음이 아닌
덤덤하게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할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수많은 슬픈 이별노래가 있지만
유일하게 이 노래만이 할아버지를 추억하게 만든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을 때면
집 앞 천성산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Silhouette을 듣는다.
나에게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아있는
할아버지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함께 계시는
항상 사랑하고 보고 싶은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