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고슴도치 Aug 22. 2020

제주에서 전셋집 구하기 #1

누가 제주에서 전세 소리를 내었는가



[전셋집 구하다가 전세 박사가 되어가는 어느 예비 세대주의 탐험담]

이 글은 대한민국 부동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무주택자가 한 달이 넘도록 제주에서 전셋집을 구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 이야기다. 타지역보다 전세가 귀하다는 제주에서 굳이 전셋집을 구하는 이유부터 시작하여 전셋집을 구하면 만난 이상하고 안 아름다운 사람들과 집들과, (보증금이) 안전한 전셋집에 집착하다 보니 알게 된 고급 정보까지 모든 걸 낱낱이 기록한다. 살다 보니 내가 부동산 공부를 다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누가 제주에서 전세 소리를 내었는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도에는 월세도 전세도 아닌 연세 문화(?)가 있다. 연세란 간단히 말하자면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모아서 임대인에게 내는 것이고, 그러면 임차인에게도 한 달 치 월세 감면이라는 조삼모사 격의 소소한 이득이 있다. 주변에 독립한 친구나 가게를 낸 지인들도 대부분 연세로 집을 빌린다. 다들 그렇게 집을 구해서 사는 것이 보통이라는 걸 아는 데도, 나는 유독 그 연세를 내기가 너무 아까웠다. 쓰다 보니 좀 웃기지만 내가 어떻게 모은 피 같은 돈인데, 그걸 일면식도 없을 임대인이 뭉텅이로 날름하다니 너무 얄미운 것이다. 참고로 재작년 월세 계약 만료 때, 두 달 전에 퇴실 의사를 밝혔음에도 다음 임차인을 못 구했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안 돌려주려고 하던 임대인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인 불신 감정이 가득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길 바란다.      


여하튼 그래서 선량한 임대인들에겐 쬐끔 미안한 말이지만, 최대한 그들에게 돈을 주지 않고 집을 빌리는 방법을 찾다 보니 결국 전세였다. 마침 지금 직장도 몇 개월 이상 다니고 있어서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전셋집에 들어가기 딱 좋을 때였다. 사실 전셋집 구하려고 취업했.. 어쨌든 그렇게 해서 시작된 전셋집 구하기 프로젝트가 이렇게 한 달이 넘도록 끝나지 않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처음 전셋집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제주에는 전세가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에 반신반의하며 찾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전셋집 매물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부동산 어플인 직*에도 다*에도 간단히 검색해 보면 다 나왔다. 전세 매물이 아예 없었다면 빠른 포기를 했을 텐데, 참 신기하게도 포기 하려 할 때쯤 괜찮아 보이는, 결국 까보면 안 괜찮은 전셋집을 꼭 한두 건씩 발견해서 지금껏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마저도 가격과 사진만 보면 딱 좋은 집인데 등기부 등본을 떼어서 두세 번째 장까지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좌우로 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먼저 등기부 등본을 먼저 떼어 보거나, 부동산에 전화해서 건물 시세와 근저당을 물어보는 노련함이 장착되었다. 사람이 살만한 집을 기본 전제로 하여 전세 대출에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까지 들 수 있는 제주도 전셋집을 찾기란 영 파이였다.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지점은 이 고생을 하는 이유는 제주에 괜찮은 전셋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거나 임대료를 지불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최대한 괜찮은 집에 최대한 임대료를 덜 주며 살아보려 애쓰느라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돈이 충분하면 그냥 전세든 월세든 얼마가 됐든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 살면 된다. 쓰다 보니 거의 한두 달 치 인건비와 맞먹는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전세 포기하고 월세를 살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회비용에 눈먼 자는 8월엔 포기하지 않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 하는 여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