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 ODA 법 제도의 형성과 발전

by 라이프파인


대한민국의 공적개발원조(ODA) 법 제도는 ODA 규모의 확대와 공여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 변화에 발맞추어, 개별 사업의 집행 근거를 마련하는 수준에서 국가 차원의 ODA 전략을 통합·조정하는 체계로 발전해 왔습니다.



[1단계] 유상원조 중심의 법제 형성기 (1990년 이전)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막 전환하던 시기, 개발협력은 인도주의적 지원보다는 '경제협력'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7년「대외경제협력기금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개발도상국에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설치와 운용을 규정했으며, 기획재정부(당시 재무부)가 주관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집행하는 유상원조의 공식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직 무상원조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독립적인 법률이나 전담 기관이 부재했습니다.


[2단계] 이원적 분산 체계의 형성과 심화 (1991년 ~ 2009년)

1990년대에 들어서며 무상원조의 중요성이 커지자,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법」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외교부 산하에 무상원조 전담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 ODA는 기획재정부의 유상원조(EDCF)와 외교부의 무상원조(KOICA)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운영되는 이원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두 법률은 대한민국 ODA의 핵심적인 두 기둥을 세웠지만, 서로 다른 부처와 법률에 의해 운영되어 국가 ODA 정책의 일관성과 사업 간 연계가 부족한 구조적 한계를 낳았습니다. KOICA나 EDCF 외의 부처들은 별도의 ODA 전문 법률 없이, 각자의 설립 근거 법령(「정부조직법」 등)에 명시된 ‘국제협력’ 조항과 「국가재정법」에 따라 확보한 사업 예산을 근거로 ODA를 추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ODA는 여러 기관에 의해 분절적으로 추진되었고, 이는 유사·중복 사업의 발생, 원조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통일된 국가 전략 부재라는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3단계] 통합 거버넌스 구축과 제도 발전 (2010년 ~ 현재)

분산된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원조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결정적 전환점은 2010년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의 시행이었습니다. 특히 2009년 대한민국의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선진적인 ODA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기존의 개별법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존재하는 ODA 정책의 최상위 '우산법(Umbrella Act)'으로서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를 도입했습니다.


· ODA 통합·조정 기구 설립: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설치하여, 정부가 수행하는 모든 ODA 관련 주요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기능을 부여했습니다.

· 전략적 ODA 계획 체계 도입: 5년 단위의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과 매년 '종합시행계획' 수립을 의무화하여, 모든 기관의 ODA 사업이 국가적 전략의 틀 안에서 추진되도록 했습니다.

· ODA 평가 시스템 의무화: 모든 ODA 사업에 대한 평가를 의무화하여 사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그 결과를 다음 정책 수립에 환류하도록 제도화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ODA는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정점으로, 그 아래에서 「대외경제협력기금법」과 「한국국제협력단법」이 각각 유상·무상 ODA의 핵심 집행 근거로 기능하는 위계적인 법률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40여 개 일반 부처들 역시 이 기본법에 따라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통합적인 조정과 감독 아래 ODA 사업을 수행합니다.



지속적인 제도 발전을 향한 노력

이러한 제도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ODA 사업의 효율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2025년 9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정안은 ODA 사업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관부처의 권한 강화: ODA 주관 부처의 사업 점검 및 사후 조치 권한을 강화하여 사업의 책임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 재외공관의 역할 확대: 재외공관의 연례 실태조사를 의무화하여 현장 중심의 사업 관리를 도모합니다.

· 현지 전문인력 배치 근거 마련: 사업 현장에 전문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사업의 전문성과 효과성을 제고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별 사업의 분절성과 현장 관리의 한계라는 기존의 비판을 배경으로 발의된 만큼, 이번 개정안이 대한민국 ODA 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 공적개발원조(ODA)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