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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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팀에서는 팀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진단들을 해보았다. 난 경영학과 나부랭이지만 동료들 중에서는 심리학 석사나 박사도 있어서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주워 들었다. 올 한 해 팀에서 해본 테스트는 전부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MBTI, 에니어그램, Big5부터 팀-개인 적합성 테스트, 팀 모델 공유정도 테스트, 문제해결방식 진단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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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로 알게 된 이야기들은 이런 것이다. 일단 MBTI와 에니어그램, Big5 중에서 심리학의 이론적 베이스가 있는 진단은 Big5 뿐이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MBTI나 에니어그램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걔네들이 더 재밌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두 가지 테스트는 사람 성격을 유형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기억이 잘 난다. 어 너는 무슨 유형이지? 이렇겠네? 나는 무슨 유형이라서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좀 더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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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5에서는 사람의 기질을 다섯 가지 측면으로 분류해서 점수화한다. 즉 높고 낮음은 있지만 유형 구분이 없다. MBTI에서는 2점 차이로 외향과 내향이 갈리기도 한다. 51점과 49점은 다른 유형으로 분류되어 버리기 때문에 성격 특징이 명료하지 않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점수화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대신 내 점수 다섯 가지를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 점수는 더더욱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대화의 가십거리가 되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덜 재미있다. 이론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지만 기업에 잘 팔리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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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기질은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증이다. 이 중에서 내가 점수를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신경증뿐이다. 왜냐면 우리 팀에서 제일 낮은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신경증 성향이 낮은 사람은 민감성이 떨어져서 먼저 위험을 감지하거나, 이런 걸 못한다. 대신 안정적이다. 어지간한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회사 그만두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경고해도 귓등으로 듣고 마는 것도 이런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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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에니어그램을 좋아한다. 내용이 흥미로워서 책도 한 권 읽고 사람들에게 세미나도 해주고 그랬다. 에니어그램은 사람을 9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나는 7번 유형에 속하는데, 이 유형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나비'다. 팔랑팔랑 나비. 7번은 재미없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처음 에니어그램 설명을 들을 때 강사님이 이 말을 해주었다. "7번 유형은 자기가 7번인걸 참 좋아해요." 이 말은 나에게도 유효했고, 내가 진행한 세미나를 들은 사람들에게도 모두 유효했다. 7 번들은 자기가 7번 유형인 것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래서 내가 이 테스트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곳에도 전파했던 것 같다. 재밌는 것 좋아하고 인내심은 별로 없는 나비들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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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런 테스트도 잔뜩 했는데, 작년부터 손금이랑 관상도 공부하고 있다. 공부라고 하기에는 손금 책 한 권보고, 관상은 발췌독 한 게 전부이긴 하지만. 요즘은 부쩍 자주 내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끊기고 휘어지는 손금을 보면서 내 인생의 힌트를 손바닥에서 찾으려고 한다. 자꾸 손금에 의미 부여하는 것 같아서 그냥 주먹을 꼭 쥔다. 나도 안다. 이 손금을 그렇게 해석하는 건 억지다. 억지 그만 부리려고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서 타닥타닥 타이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