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 인간

day-36

by Lucie

1.

우리 팀에는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통계적 분석을 잘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해보고 싶어 한다. 성공하는 팀의 비결 세 가지라거나,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팀을 구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식의 일반론을 데이터로부터 끌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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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접근에 반감이 있다. 일반론을 찾아내는 것이 개인들에게 과연 이로움을 주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세요. 오답노트를 만드세요. 벼락치기 대신 하루 한 시간만 공부해 보세요. 14일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이런 식의 명제들은 늘 내 인생을 비켜갔다. 흥미를 못 느끼면 집중력을 상실하는 탓에 재미없는 걸 꾸준히 하는 것은 다 실패했다. 영혼 없이 오려 붙이고 베껴 적었던 오답노트 역시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도 읽다 집어던질 뻔했다. 뭔가 잘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그대로 됐지? 그렇지?라고 나에게 채근하던 책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의외의 행운이 깃든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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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인적 경험 탓에 일반론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다. 그래서 데이터를 모아서 일반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되는 R도 자주 켜보고 데이터 분석 툴도 써보고 외부 강의도 들으러 다녔다. 그런 덕분에 아주 약간의 데이터 분석 관련 지식이 생겼다. 친구는 나에게 역설했다. 최근에는 데이터 없이는 어떤 의사결정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조금만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면 너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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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도 쉽게 돈 벌고 싶은 생각이 없나보다. 역시나 너무 노잼이다. 그런데 오늘은 재밌는 데이터를 봤다. 사람들의 의견이다. 최근 회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는 주관식 문항이 한 개 있었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은 내용을 적어주었다. 나는 그것 전체를 읽고 분류했다. 변수들의 상관관계 파일은 갖고도 별로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텍스트로 된 그것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오늘은 노트북을 들고 퇴근을 했다. 이 데이터는 비로소 조금 더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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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더 잘 살기 위해서 치열한 고민을 하겠지? 그럴 때면 사람들은 각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백일 동안 글 쓰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사람들만 봐도 매일 총 천연색의 일기를 쏟아낸다. 나는 약간 특이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보면 나는 그저 하나의 색깔에 그친다. 다들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면서 타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세계의 사물을 처음 보는 것인 양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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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면 내가 정말 미시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을 돋보기를 들여다 대고 본다.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통계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더 찾기는 했다. 분석에서 나온 결과를 다시 개인에게 와 닿는 형태로 가공하는 것. 거시적 차원의 정보 값을 다시 미시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일. 그것이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다.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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