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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 Nov 30. 2023

2023년 11월의 마지막날, 응급실에서

2호가 열흘 넘게 열이 오락가락한다. 기침도 심하고 약을 어도 당체 나을 기미가 없다. 독감 체크를 2번 했지만 모두 음성. 목은 벌겆게 부어올라 항생제가 듣지 않는지 40도 고열이 며칠째 계속된다.


폐렴이 아닌가 의심했다. 환절기 시즌이라 기백명 환자를 보는 피곤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쳇바퀴 도는 진료 루틴과 비급여 독감키트 확인에 거쳐 며칠 전 얘기했던 진단 피드백이 녹음되듯 흘러나온다. 화가 났다. 동시네 그의 노곤함과 무기력함이 느껴져 민이 올라온다.


그러나 오늘 밤은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해열제가 듣지 않는다. 22일째 경련을 하지 않고 잘 버텼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열이 끓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한다.


응급실로 가는 길 불길한 예감이 든다.

2호가 불러도 대답이 없다. 청색증이 오고 소발작이 시작됐다. 자극을 주지만 반응도 없고 의식도 흐려진다. 40도가 넘는 고열을 버틸 만큼 버텼다 생각했는지 이번 경련은 꽤나 심하다. 신호등이 걸릴 때 입으로 숨을 불어 넣어 억지로 호흡을 시킨다. 다행히 다시 시퍼런 입술색이 발갛게 돌아오며 숨을 쉰다.


경련이 5분 넘게 멈추질 않는다. 쌍깜빡이를 켜고 미치도록 질주한다. 의식 없는 2호를 들쳐 안고 응급실 침대에 눕히고 상황 설명을 한다.


결국 아티반이 들어가고 경련이 멈춘다. 10분은 족히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오래 하면 타격이 따른다. 끊겼던 경련은 당분간 다시 될 수도 있다. 허탈했다.


응급실은 고열 때문에 오려고 했던 거지 경련 때문이 아니었다. 주객이 전도됐다. 다량의 혈액을 먼저 채취하고 폐렴 확인을 위해 X-Ray를 찍었다. 해열제 주사를 맞고 항생제 알러지 반응을 위해 팔 여기저기 뾰족한 바늘이 연신 꽂힌다.


아내는 좀 더 빨리 데리고 갔어야 했다며 한탄한다.

아니라며 완벽한 타이밍에 나온 거라 위로한다. 고열이 이렇게 나니 버틸 수 없었겠지 괜찮아 질거라 힘주어 얘기한다.


2호의 급작스런 응급상황에 놀랐겠며 잠 못 잘 텐데 힘들겠다며 위로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그동안 러닝으로 체력을 다졌다며 괜한 허세를 부려본다.


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주님, 당신은 정말 거지 같아요!"


됐다.

하루가 천년같은 그 양반... 이제 됐다.




응급실에 온지 3시간이 지났다. 열이 떨어진 2호는 드디어 잠을 잔다. 알러지 반응 검사가 끝나고 항생제가 달렸다. X-Ray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까 포터블 X-Ray기계 모니터에 뜬 흉부 사진을 봤다. 과거에 봤던 폐렴 사진과 매우 닮았다. 정확한 진단이 나오면 열흘간 괴롭힌 열과 이별할 수 있다.


분위기 안 맞게 우울은 가라앉고 기대감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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