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처음으로 수동 필름 사진을 찍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에는 지금까지 필름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동아리방에 있던 무거운 니콘 FM-2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어린이 대공원을 걸어 다니며 서툴게 조리개를 돌리고 셔터 스피드를 확인하고 뷰파인더 속 동그라미를 맞추려고 애를 먹었다.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덩굴 식물로 둘러싸인 반원형 통로 속, 몇몇 동물 같은 것들을 찍었고 그때 찍었던 사진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필름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손으로 감은 필름을 탱크에 넣어 교반해 상을 맺히게 했을 때였다. 흑백 필름이었으니 크게 복잡할 것도 없었다. 탱크에서 꺼낸 필름은 나의 눈이 보았던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는 말린 필름을 잘라 라이트박스 위에 얹고, 루페로 초점이 제대로 맞았는지 들여다본다. 동글동글하게 맺힌 장면들을 골라내어 암실로 들어가 몇몇 과정을 거치면 그림 그리듯 종이에 인화해낼 수 있었다. 그건 오직 필름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필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인도에서도 가방은 한구석은 필름 뭉치로 가득했다. 몇 장 찍으면 다시 갈아 끼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결코 가볍지 않은 카메라의 무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찍고, 필름을 갈고, 그렇게 손으로 잡은 장면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필름카메라 앞에 서 있는 내가 있다. 나의 맞은편에는 자동 필름카메라를 든 엄마가 뷰파인더 너머로 나를 바라본다. 태어난 다음의 순간, 나를 꼭 안고 있는 오빠, 넘어지고 나서 엉망이 된 얼굴, 발가벗고 목욕하는 모습들. 사진을 찍은 다음 곧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는 몇 개씩 모은 필름을 현상하고 그중에서 몇 장씩은 꼭 인화를 해서 사진 앨범에 끼워 놓았다. 매 장마다 끈끈한 비닐에 덮인 커다란 앨범이었다.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이었으므로 총 세 권의 앨범이 만들어졌다. 아마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존재하지 않아서 필름밖에 쓸 수 없었겠지만, 현상되어 비닐에 포장된 필름 뭉치들을 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내가 존재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제는 더 이상 필름이 아니어도 필름처럼 보이는 사진을 만들 수 있고, 불과 몇 년 만에 필름 값이 몇 배는 올라 더더욱 필름 사진을 선뜻 찍겠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자주 쓰는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싶어 진다. 장면을 손으로 잡아 기록하고 싶다. 메타버스를 외치는 시대에 무슨 소용이냐 코웃음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 수고를 들이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다시 보게 되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지나간 시간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은 아직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