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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Apr 10. 2023

용기와 최선과 시간을 다해

<사과>

 최근 운전을 하기 시작한 동생에게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 누가 보아도 상대방 과실이 명백했던 일이었는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자신의 잘못을 부인했다고 했다. 조금 긁힌 차량에 대한 대물 접수만 하려고 했던 동생은 곧이어 대인 보험 처리도 접수했고 병원을 돌았다. 결과는 100:0이었다. 마음이 놀라기는 했겠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기에, 그가 진심으로 사과만 했더라면 합의의 선택지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과의 말에도 경중이 있는 것 같다. 가령, 마음 깊이 미안하지 않을 때의 사과는 쉽다. 가볍게 전하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다. 큰 잘못이 아닐 때나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의 사과는 곧바로 잘만 튀어나온다. 일을 하다가 죄송하지만~으로 시작되는 형식적인 말이나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만한 일, 몰라서 생긴 사소한 실수, 내 잘못이 아니지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기계적으로 잘 죄송한 사람이 됐다. 적당히 미안한 마음, 혹은 별로 안 미안한 마음으로 뱉는 사과다. 너무 자주 죄송하다 말하는 버릇은 좋지 않겠지만 상하관계가 분명할 때 짧고 담담하게 하는 사과는 상황을 정리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꽤 도움이 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은 정말 괴롭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누군가에게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감정 소모,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은 기본이다. 상대가 나를 용서하고 서운한 마음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 어떤 때에는 차라리 용서하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나의 사과에 신경 쓰게 해서 또 미안한 마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후회와 반성의 시간으로 얼룩진 사과를 준비하다 보면 언제고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무리 노력해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어쩌지, 이불을 차고 발을 동동거린다. 이런 마음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와의 인연을 계속하고 싶은 까닭이다.


 그러나 역시 사과는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과를 한 것으로 마음이 후련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과를 한 사람은 초조해야 한다. 최고의 사과라는 건 없으니, 계속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용기와 최선과 시간을 다해 사과를 이어 나가야 한다. 고맙게 상대가 사과를 받아 주었다고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더 단단하게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상대를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언제고 또 새로운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잘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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