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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야맘 May 26. 2022

왜 나만 상처받는 걸까

이쯤 되니 나의 문제인가 

나는 딸딸 아들 삼 남매의 장녀다.

진부하고 고루하게도 엄격한 아빠와 다정한 엄마 아래에서 자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빠는 엄격을 넘어 무심하고 폭력적이었다.


아빠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돈을 벌어서 유세라도 하는 듯이 더 엄마와 나, 동생들을 잡았던 거 같고 경제력을 잃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후에는 집에 있으니 본인의 상실감, 화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족들에게 풀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폭력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아빠는 보통 공부 성적이나 공부 태도를 가지고 매를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공장 가서 돈이나 벌어. 등의 발언이나 본인의 희생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의 동기가 공부이다 보니 본인은 훈육을 했다고 믿었을지도 모르나 실은 본인 화를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키 180이 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의 있는 힘껏 때리면 그게 훈육인가. 한두 대 때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 보니 공부의 동기가 자기 효능감 이런 거였을 리가 없고 그저 맞기 싫어서, 혼나기 싫어서였던 것 같다.


집안 분위기가 이러면 집에 있기가 싫다. 집에 있다가도 아빠가 오면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핑계로 학원으로, 독서실로 밖으로 돌다가 자정을 넘겨서 집에 가곤 했다. 진짜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집에 가기 싫었던 이유가 더 컸다. 


혼낼 때 혼내더라도 자식들에게 애정을 잘 표현해줬더라면 지금처럼 연락을 영영 끊지는 않았을까. 막냇동생이 성인이 된 후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그 뒤로 나는 아빠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내가 결혼할 때 마지못해 상견례와 결혼식장에는 오셨지만 개인적은 연락은 그 뒤로도 몇 년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생들이 몇 해 전부터 아빠와 연락을 주고받고 이따금 만나 식사를 하는 걸 알게 됐다. 남동생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내 맘 편하자고 이러는 거야"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했고 여동생은 내게 "언니, 그런데 우리 집이 그렇게 막 엄청 막장에 이상한 건 아니야. 더 이상한 집도 많아"라고 말했다. 


나는 오랜 기간 아빠를 원망했다. 애정결핍과 자기혐오에 시달릴 때, 우울감에 매몰될 때마다 이건 다 아빠에게 너무 오랜 기간 맞아서, 사랑받지 못해서 생긴 거라고 믿었다.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때, 나조차 나를 하찮게 여길 때 이건 다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들은 소리 때문에 학습이 되어 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자란 구김살 없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를 구긴 아빠를 탓했다.


그런데 같은 부모 아래 자란 동생들은 왜 나보다 괜찮은걸까.

남동생은 아빠에 대한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기가 발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건 인정.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동생의 결정에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동생도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처럼 내게 말했다. 우리 집보다 더 이상한 집 엄청 많다고.


이쯤 되니 나 자신의 상처가 나 자신에게도 징징거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어렸을 적 아빠에게 맞고 방구석에서 울던 어린 시절의 나에서 못 벗어나고 몸만 큰 어른 아이가 된 걸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원망해왔던 아빠. 내 몸의 피 중 아빠 몫은 다 빼버리고 싶다고 믿었었는데. 실은 누구보다도, 동생들보다도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었구나.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하자 조금은 편안해졌다. 실은 내가 아빠에게 너무나 사랑받고 싶었구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어릴 적 우리 집은 아파트 13층에 살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계단 손잡이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아래로 쏙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처음 했을 때가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훌훌 털고 씩씩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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