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omas Nov 02. 2016

Day 8. 카프리섬. 아나카프리 몬테솔라로 전망대.

카프리섬 당일치기. 그리고 영국에서 산 바버 자켓을 나폴리에 두고 오다.




포지타노 아침 조깅 풍경.



  포지타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테라스 너머로 평화로운 마을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어제와는 다르게 하늘엔 구름이 조금 끼어있었다. 아직도 이 곳에 내가 있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침 조깅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이 곳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아침 조깅이었다. 신선한 새벽 공기, 산과 바다, 절로 달리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길. 나는 위시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산 둘레를 따라 난 도로 위를 30분 정도 달리다 보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큰 차도를 따라 쭉 달리다보니 길은 마을 아래 해안가에 닿아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바라보는 포지타노의 아침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오늘은 포지타노에서 배를 타고 카프리섬에 가는 날이다. 어제 해변가에 내려갔을때 미리 10시 카프리행 배편을 예매해놨었다. 조깅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가서 뷰가 좋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조식을 기다렸다. 땀 거의 식어갈 때쯤 트레이 위에 빵과 버터, 잼, 햄, 우유, 시리얼, 커피, 주스, 계란이 정갈하게 담긴 조식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조식이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있는 것 같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방으로 돌아가 외출 준비를 했다. 10시쯤 해변가로 내려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항구에 모여있었다. 




카프리 항구의 전경. 구름이 조금 껴있다.



  포지타노에서 카프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배로 30분쯤 걸린 것 같다.) 카프리섬에 가면 보통 푸른 동굴과 아나카프리에 몬테솔라로 전망대 두 곳을 방문하는게 일반적인데 나는 몬테솔라로를 가기로 결정했다. 우선 날씨가 흐려서 푸른 동굴에 입장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입장한다고 해도 푸른빛을 제대로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프리섬의 푸른 동굴은 날씨 때문에 일 년 중 3분의 1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간혹 후기를 보면 입장료에 비해 그다지 볼 게 없다는 평도 많아서 그냥 전망대만 둘러봤는데 결론적으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카프리섬에서 몬테솔라로 전망대까지는 미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카프리섬은 크게 카프리와 아나카프리 2곳으로 나눠져 있다. 몬테솔라로 전망대는 아나카프리에 있는데 여기로 가려면 미니 버스를 타야한다. 그래서 전망대로 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 루트를 이용해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참 유럽여행은 어딜 가나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많은 것 같다. 비수기에도 이 정도인데 성수기에는 얼마나 줄을 서야 할까. 그나저나 이 많은 사람이 미니 버스에 다 탈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아나카프리행 버스가 많지 않아서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내 앞에 중국인 부부와 국정 불명의 외국인 가족은 서로 이야기하더니 서로 join해서 택시를 타러 줄을 빠져나갔다. 여행에서는 시간이 금인데 나도 껴서 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말 그대로 한국의 마을버스보다도 작은 미니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이 많은 사람이 저 차에 다 탈 수 있을까. 꾸역 꾸역 앞줄서부터 사람들을 태우더니 나는 가까스로 거의 마지막에 승차할 수 있었다. 내 뒤로 몇 사람이 더 탔고 버스안내원은 매정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불행 중 다행이다.





몬테솔라로 전망대에 오르면 아나카프리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버스 기사는 산을 둘러싼 좁은 길을 능숙하게 운전했다.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아나카프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다 하차했다. 내리는 곳에 바로 몬테솔라로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었다. 전망대 케이블카는 1인용이었는데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고 작은 의자에 고정되지 않는 바가 전부였다. 사실 떨어져도 다리 하나 정도 부러질까 말까 한 높이여서 큰 문제는 없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빙글 빙글 케이블카 반환점에서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있었다. 나도 타이밍에 맞춰 엉덩이를 털썩 깔고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정말 멋졌다. 하얀 집들로 통일된 아나카프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느새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몬테솔라로 위에서는 카프리섬을 여러 각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내 마음까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하면서 정말 좋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풍경에서는 내 사진을 한 장 쯤 남기고 싶은데 혼자 여행하다 보니 셀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풍경때문에 살짝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영국에서부터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싶을 때는 지나가는 여행객들에 사진을 부탁하곤 했다. 사실 한국에서 사온 셀카봉이 있긴 했는데 캐리어에서 한 번도 꺼내질 않았다. 뭔가 혼자 셀카 찍는 게 처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남에게 부탁해서 찍는 게 훨씬 사진이 잘 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튼 전망대를 구경하던 지나가는 외국인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커플 중 남자가 사진을 흔쾌히 찍어줬는데 여자친구에게 사진의 기술을 전수받은 덕분인지 꽤 괜찮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는 길, 올라오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아나카프리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몬테솔라로 정류장 근처에는 작은 교회와 몇몇 관광 명소가 있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대신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한 골목에 위치한 굉장히 맛있는 길거리 피자집이었다. 때마침 점심때여서 뭘 먹을지 고민하던 차에 굉장히 맛있어보이는 피자집을 발견했다.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가 올려진 네모난 카프레제 피자는 정말 꿀맛이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Anna와 함께 말아피던 롤링 타바코가 생각나서 담배 가게에 들렀다.  담뱃잎과 필터, 종이를 각각 사서 재료들을 모아 담배 한 개비를 조심스럽게 말아봤다. Anna집에서 6일 동안 훈련을 받았지만, 여전히 담배를 마는 건 쉽지 않았다. 

 다시 미니 버스를 타고 카프리로 돌아갔다. 이 미니 버스 기사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운전하면서 핸드폰 통화를 했는데 내 옆에 미국인 아저씨는 이를 못마땅해했다. 사실 저 버스 기사는 이미 수백 번도 더 왔다간 길이라 눈 감고도 운전하라고 해도 자신 있게 하겠지? 다시 카프리섬으로 돌아오니 항구 근처의 번화가가 눈에 들어왔다.포지타노행 4시 배편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거리를 구경했다. 길에는 크고 작은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가게, 심지어 프라다 매장까지 눈에 보였다. 이탈리아는 명품 브랜드 매장이 꼭 백화점에만 있는게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 레몬맛, 레몬껍질맛 젤라또를 사먹고 기념품 가게에서 레몬 사탕도 한 봉지 샀다. 여기서 레몬에 집착한 이유는 이탈리아 남부는 레몬이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포지타노는 물론 카프리나 이탈리아 남부 마을에서는 레몬 관련 기념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카프리 섬도 유명 레몬 재배지인지 지나다니다가 레몬을 재배하는 농장도 볼 수 있었다.




레몬레몬한 카프리섬 기념품 가게, 레몬술도 있다.



  카프리섬에서 4시 배를 타고 다시 포지타노로 돌아왔다. 내리자마자 배가 고파서 어제 갔던 레스토랑 옆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여기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많이 보던 곳인데, 꽤나 유명한 식당처럼 보였다. 바닷가에 왔는데 왠지 생선 요리가 맛있을 것 같아서 삶은 감자를 곁든 흰 살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올리브유에 고소한 삼치 맛이 나는 생선 요리였는데 맛은 있었지만 역시 나에겐 쌀밥에 고등어자반이 최고의 생선 요리인 것 같다. 해는 어느새 저물고 식당에서 나올 때쯤엔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숙소로 가기 위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포지타노는 다 좋은데 골목 사이사이로 계단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덕분에 젤라또 먹고 살찔 걱정은 덜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내일 로마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했다. 꿈만 같은 포지타노에서의 이틀이 금세 끝나버렸다. 마지막으로 야경을 바라보면서 정말 나중에는 이탈리아 남부만 여행을 해볼까 생각했다. 캐리어에 짐을 하나둘씩 정리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게 빠졌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바버 자켓이 없어졌다. 사실 없어진 게 아니라 두고 온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나폴리의 호스텔 방에 있는 옷장에 그냥 걸어두고 포지타노로 온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이틀이나 지나서야 알게 된 됐다. 당황해서 호스텔로 전화하려고 하니 영국에서 산 쓰리심 요금제로는 이탈리아 내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방안에 있는 전화기도 내선 전화가 안됐다. 한참을 전화를 할 궁리를 찾다가 '에이 없어졌으면 진작 없어졌겠지.'라고 생각하고 내일 프런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쩐지 덜렁거리는 내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여행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행 8일째에 드디어 사고를 치는구나. 나의 바버가 온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 To be continue )






매거진의 이전글 Day 7. 그림 같은 풍경, 포지타노. 완전한 휴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