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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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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Dec 26. 2017

보라매 <5>

5화 - 호전, 건강에 대하여


호전


  다행히도 환부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주일 가까이 꼽고 있었던 정맥 주사 바늘을 교체하고 염증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를 진행했다. 덕분에 잠에서 깨자마자 주사 바늘에 두 번이나 찔려야 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간호사에게 팔을 내주었다. 회진 시간에 맞춰 주치의 선생님이 드레싱을 갈아주러 오셨다. 의사 선생님은 왼뺨의 드레싱을 뜯어내고 슬쩍 들여다보더니 많이 나아졌다며 이 정도 회복세면 다음 주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이곳에 머문 지 벌써 9일째다. 그렇지만 나는 퇴원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염증이 재발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다. 워낙 상태가 심각했어서 염증이 많이 좋아져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낮에는 면역력이 약하고 염증이 잘 일어나는 나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나에게 딱 맞는 건강기능식품들을 골라서 주문했다. 그중 차가버섯 분말가루도 있었는데 이는 맞은편 침상에 계신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구매한 것이다. 러시아에 거주하시는 아주머니는 유방에 생긴 종양이 차가버섯을 먹고 많이 호전됐다고 하셨다. 그 뒤로 다른 건강식품은 쳐다도 안 보고 차가버섯 우린 물만 마신다고 차가버섯에 대한 무한 신뢰를 내보이셨다. 알고 보니 차가버섯이 시베리아 특산품으로 혹독한 추위에서 자라야 품질이 우수한 버섯이었다. TV에 가끔 하루에 건강보조제품을 9-10알씩 먹는 연예인들이 나올 때면 속으로 의아했었는데 지금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아프면 이해심이 깊어지는가 보다.



건강에 대하여


  또 한 번 맞이하는 보라매의 금요일 밤. 지난주 금요일과는 다르게 왼뺨의 불타는 통증은 없었다. 오늘 저녁은 저번에 왔던 대학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불금인 만큼 병원밥 대신 친구가 사 온 KFC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패스트푸드의 감칠맛은 정말 예술이었다. 상처도 낫고 햄버거도 먹고. 참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하루다. 이어서 다른 대학 친구 한 명도 병원을 찾아왔다. 친구는 왼뺨에 드레싱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새X 엄살인 줄 알았는데, 야 많이 아프냐?'



  우리는 편의점에서 따듯한 음료를 사들고 본관 로비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펼쳤다. 여기 있다 보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병실 이외에는 휴게실에 앉아서 티비를 보거나 희망동 1층을 산책 겸 걸어 다니는 게 내 생활 반경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링거 거치대를 끌고 다녀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희망동 1층 엘리베이터 쪽 벽면에는 유화 작품들이 여럿 걸려 있었는데 똑같은 그림을 매일같이 보다 보니 감흥도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어제 '아띠 앙상블' 위문 공연이 있어서 간만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조성진이 연주한 쇼팽 발라드, 쇼팽 피아노 협주곡, 드뷔시의 달빛, 라 캄파넬라 등 여러 클래식 연주 영상을 자주 감상하게 됐다. 내 몸은 구속되고 불편할지라도 감수성은 잃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나마 나는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이 정도의 자유라도 누릴 수 있지만 거동조차 불편한 사람들에겐 병원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잠시 휴게실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쩌다가 얼굴을 다쳤냐고 해서 그동안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본인은 15년 동안 심장 질환을 앓다가 최근에 투석까지 하게 돼서 이곳에 입원했다고 했다. 자신은 앞으로 평생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피를 투석해야 한다며 꼭 젊었을 때 건강 챙기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는 친구 아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부산 어느 횟집에서 조개를 잘못 먹어서 패혈증으로 3일 만에 죽었다고 했다. 곧 결혼도 앞두고 있었고 사업도 잘 되어가는 찰나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울상을 하며 휴게실에 불쑥 나타났다. 그 아주머니는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병원에서 지내셨는데 어머니가 자꾸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가슴이 진정이 안된다고 하셨다. 순간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침상으로 돌아와 누웠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을까. 나와 내 가족,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뿐이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6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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