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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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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mas Dec 19. 2017

보라매 <4>

4화 - 미신, 교훈



미신

  

  저번 주 목요일 봉와직염으로 입원한 이후 어느덧 7일 차. 계속해서 염증 부위에 진물과 고름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 항생제도 더 강한 종류로 교체됐다. 체온이 38도를 넘어가 해열제도 여러 번 맞았다. 지난 토요일, 병문안 온 친구가 빨간 팬티를 사다 줬었는데 이걸 입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날 이후로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특히 요 며칠간은 진통제가 없으면 통증을 견디기 버거웠다. 정말 최악은 자려고 진통제를 먹은 지 두세 시간 뒤에 통증이 다시 느껴질 때였다. 진통제는 재복용까지 8시간 정도 간격을 둬야 해서 남은 5시간은 고스란히 고통을 감내하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역시 미신은 하나도 믿을게 못된다.


교훈


  나는 하루에 한 번, 새벽 회진 시간에 드레싱을 새로 갈았는데 매번 드레싱을 걷어낼 때마다 한껏 긴장했다. 왜냐면 오늘은 내 상태가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참 엿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환부를 들여다보며 나를 걱정을 해주셨다. '장가가셔야죠! 그래도 아직 나이도 젊고 항생제를 맞다 보면 결국 호전될 거예요.' 그렇다.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결국엔 나을 거란 믿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봉와직염은 항생제 치료 시작 후 7일에서 10일까지 호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안에 낫지 않으면 심각한 염증이라고. 11월 말부터 지금까지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잘 버티다가도 벌어진 드레싱 틈으로 진물과 피로 범벅이 된 왼뺨을 보고 있자면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번에 받은 피검사 결과 패혈증 증상은 없었다. 밤에 열이 내리지 않고 전신에 미세한 근육통까지 느껴지고 숨 쉴 때 가슴이 살짝 갑갑하면 패혈증이 아닌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서워했는데 지나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다만, 염증 수치(crp)가 10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중증의 염증 상태다. 그래도 주치의 선생님은 나이가 젊으니 항생제 맞고 잘 치료하면 호전될 거라고 했다. (장가 못 가면 선생님 책임이에요.)


  좀 아파보니까 내가 놓치고 살던 게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됐다. 외과 병동에 누워계신 많은 어르신들과 그들의 가족이 나누는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자면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건강, 가족, 친구, 나의 젊음.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 나는 퇴원하고 나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우선 보라매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옮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올해 처음 한강에 결빙이 생긴 날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계속 병원 안에만 있어서 추위도 모르고 지냈다. 밖은 한파라던데, 집에 보일러가 동파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나는 아침을 먹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보라매 병원 희망동에는 햇볕이 별로 들지 않았다.




(5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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