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쓰고 지우고 반복했지만 결국 이렇게 밖에는
유럽의 저 끄트머리 바다 건너 외로이 떠 있는 섬, 아이슬란드. 외딴섬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섬을 반 바퀴 돌아 최북단에 있는 로이벌호븐이라는 마을에 왔다. 북극권(위도 66도)에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인구가 200명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 어업이 주업이었던 마을은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열두 나라에서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우리 일행은 머잖아 사라질 지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 대한 기록 다큐멘터리를 찍는 팀에 합류했다. 다큐멘터리 작업도 새롭고 흥미로운 도전이었지만, 무엇보다 때 묻지 않은 아이슬란드의 자연과 환상적인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아이슬란드로 이끌었던 것 같다.
로이벌호븐에 머문 지 나흘 째 되던 밤, 매일 손꼽아 기다리던 오로라가 찾아왔다. 잠들기 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다들 분주하게 방한복을 입고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기고 있었다. 늑장을 부리다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일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을 젖은 머리나 말리다가 놓쳐버린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파자마 차림에 점퍼를 대충 걸치고 영하의 추운 들판으로 바람처럼 뛰어 나갔다.
육안으로 구름인지 오로라인지 선명하게 구분이 안 되는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눈이 색맹은 아닌지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겨우 저걸 보자고 이렇게 춥고 먼 나라까지 온 것인가, 무지개만도 못한 오로라에 실망하고 말았다. 따뜻한 방으로 돌아와 꽁꽁 언 머리카락을 녹여서 말리다가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힐끗 내다보는데, 창문 너머로 선명한 푸른빛이 커튼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한 겹 한 겹 옷을 야무지게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깜깜한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 위로 커튼처럼 휘날리는 오로라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우주에서는 한 편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있었고, 나는 그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러 극지방이라는 연주회장에 온 관람객이 된 듯했다.
사진을 잘 찍는 이들은 좋은 구도를 잡기 위해 삼각대를 들쳐 메고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사진에 미련이 없거나 소질이 없는 나머지 사람들과 나는 눈밭에 누워서 뛰는 가슴 위에 두 손을 가만히 얹고는 하늘 너머 '우주'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엔가 푸르른 오로라의 테두리에 분홍빛까지 겹쳐졌다. 밤하늘 위로 춤추듯 출렁거리는 오로라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그저 숨을 죽였다.
감동이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남발하지 말고 이런 순간을 위해서 아껴두었어야 했다. 밀라노에서 맛본 기막힌 화덕피자나 런던의 미술관에서 마주한 명화들, 파리의 에펠탑을 앞에 두고 내뱉었던 ‘감동’이라는 말을 오로라의 감상에 재활용하고 싶지 않았다. 닳고 닳아버린 감동이라는 말로는 가슴 뛰는 이 순간을 온전히 담아낼 수가 없다. 비로소 말로도 사진으로도 옮겨 담을 수 없는 순간을 만난 것이다.
뭐라고 써야할 지 몰라 '서랍'에 오래 묵혀놓았던 글.
여전히 마음에 안 차는데, 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거대했다고 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