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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팡 Dec 17. 2020

축축하고 고립된 그곳, Hinterland

이 맛에 본다 - 넷플릭스 - 힌터랜드

오래된 솜이불을 쥐어 찢은 듯한 안개 덩어리가 펼쳐진 대지는 불길하다. 그 대지를 터전 삼아 사는 인간들의 삶은 오한이 든 것처럼 쑤시고 열이 난다. 대지는 자신의 품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을 하찮게 여긴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광활한 대지의 매력이 힌터랜드에 가득 펼쳐진다. 해풍으로 묵직해진 공기의 밀도와 신문지를 태우고 남은 재를 발라 놓은 하늘이 동공의 지름을 키우며 몰입하게 한다.


범인을 제압하는 신체적 능력이나 신들린 직관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주인공 마티아스 경감은 쌍둥이 딸의 사진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극심한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수사 중 말도 없이 혼자 사라지기 일쑤고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풍선처럼 땅땅져 있다. 자신의 슬픔과 닮아 있는 인간들이 벌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 안에서 점점 과거의 고통과 지금의 혼란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건은 대지의 품에서 벌어진다. 매번 과감하게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희생자의 얼굴도 그 대지의 일부이다. 마티아스 경감도 그 대지를 방황하며 보고 들은 것을 찾는다. 대지는 모든 사건의 목격하지만 늘 침묵으로 일관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표정도 대지를 닮아서 침묵한다. 피가 스며든 대지, 그 대지가 스스로 단서를 알려주기 전까지 저주는 풀지 않는다. 마녀의 귀띔 같은 바람과 악마의 입김 같은 안갯속에서 마티아스 경감은 플래시를 켠다.


힌터랜드를 보는 우리는 브리티시 연방의 한 축인 웨일스 지방의 자연 풍경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감독의 카메라는 고립되고 싸늘한 대지를 한 껏 펼쳐 보이며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억척스러움과 경계심을 따라간다. 시종일관 단서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찾아가는 장면 사이사이에 대지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껴 넣어 편집한다.


화면 속의 이 땅은 스코틀랜드 북부의 웅장함에 비해 깡마르고 볼품없다. 섬의 군주가 있는 버킹검과의 물리적 거리만큼 소외돼 있으며 옥스포드에서 마시는 홍차의 여유와 코츠월드의 가드닝은 사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추앙받던 맹주의 영토에서 해가 들지 않은 음지가 있다면 바로 이 곳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잉글랜드 중심의 생활 방식을 철저하게 배제한 연출이 돋보인다.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은 허구이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장소는 실존하는 곳이고 시즌 내내 경이로울 정도로 매혹적이다. 슬쩍슬쩍 지나가는 대사 속에서 지명이 나올 때면 플레이를 멈추고 구글 맵을 켰다. 모든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경찰서의 위치와 컷의 브릿지로 쓰이는 해변이 있는 도시를 구글로 찾아 장면과 비슷한 거리뷰를 발견했을 때는 내가 마치 중요한 단서를 찾은 것처럼 희열이 느껴졌다.


<구글맵 좌표 - Aberystwyth> 경찰서와 지주 등장하는 해변이 있는 지역이다.

WYE VIEW라는 웹사이트에서 힌터랜드의 촬영 장소에 대해 상세한 리스트를 제작해 두었는데 링크 남긴다. <Hinterland Filming Location Map>




시즌 1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커다란 비밀. 그 비밀에 한걸음 다가가는 사건 또는 개별적인 사건들의 연속.

에피소드의 시작은 현장 출동을 알리는 마티아스 경감의 휴대전화 벨 소리로 알 수 있다.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악마가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다리 아래에서 치아가 모두 사라진 시체를 발견한다. 시즌 1의 첫 번째 사건이자 마티아스 경감 부임 첫날  맡게 된 첫 번째 사건이다. 그 다리를 건너니 작은 호텔이 나온다. 1996년까지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보호하던 보육원이었다. 악마의 다리가 거둔 피해자는 그 당시 보육원의 원장이었다. 사건의 조사는 보육원의 과거를 들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으로 다리를 건너는 생물의 영혼을 내놓으라 했죠



이 대사를 보며 악마의 다리 통해 보육원을 오고 갔던 사람들의 영혼이 온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즌 3까지 이어지는 복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검은 낙엽이 켜켜이 쌓인 늪처럼 축축한 사건들을 집요하게 쫓는 마티아스 경감, 그의 곁에는 항상 콤비를 이루는 마레타 경사가 있다. 사건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마레타 경사는 갑자기 불쑥 나타난 외지인 마티아스 경감이 지역 사회의 정서를 염두하지 않고 무턱대고 들 쑤시는 수사기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콤비는 맞닥트리는 사건의 수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쌓아 간다.

사건마다 범행 동기는 차고 넘치며 알리바이까지 빈약한 용의자들 투성이다. 그래서 섣불리 범인을 단정할 수 없어 마지막까지 집중하게 한다. 말미에 밝혀지는 범인의 자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운 곳을 비춰야 한다. 사건은 해결되지만 추잡하고 텁텁한 뒷 맛이 마치 냄비의 탄 자국처럼 끈덕지게 혀에 붙어서 개운치 않다.



누구나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하나쯤 있는 법이네



모든 시공간이 과거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연출 투성이다. 유일하게 요즘 시대구나라고 느껴지는 설정은 마티아스 경감이 타는 볼보 XC60 뿐이다. 이 외의 등장하는 모든 차가 낡은 구형 모델이며 인물들의 옷은 그렇게 촌스럽고 허름할 수가 없다. 주요 촬영 세트인 수사본부는 80~90년대를 보는 듯 아날로그 향수가 가득하다. 제목 말 마따라 중심과는 단절된 주변부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격차는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법이고 이 부분을 집요하게 연출 했다.



마무리,
넷플릭스 기준으로 시즌3에서 마무리된다. 후속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맑은 날 보다 비 오는 날이 더 좋은 사람. 시칠리아의 여름 바다보다 인버네스에서 바라보는 초겨울의 호수가 더 좋은 사람. 인간성을 여과 없이 들추는 수사물을 좋아하는 사람. 채도와 명도는 낮지만 암부의 대비가 있는 영상 질감을 좋아하는 사람.




NETFLIX - HENT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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