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주는 안도감과 다른 병세를 보이는 신종 월요병
회사를 그만 두었다. 40대에서 찾아온다는 사십춘기의 열병을 견디지 못했다. 그간 꽤 잘해 왔고 더 잘 해낼 자신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기척 없이 찾아온 마음의 가뭄에 나는 탈진했다. 경력, 열정, 연봉, 책임감, 체면 등 세상 사람들이 계량하여 부어주던 것들은 갈라진 마음 틈새로 금방 새어나가 버렸다. 대지를 고루 적시는 비처럼 자연스러운 채움이 필요했다. 근데 그런 비가 정말 내리기는 할까? 비는 커녕 졸졸졸 대던 월급이란 물까지 없으면 마르다 못해 사막이 되는 거 아냐? 일기예보처럼 누가 알려주면 좀 좋아.
어찌 됐던 사표라는 주사위는 내 손을 떠나 운명의 노름판 위로 던져졌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듯 빠르고 날카롭게 날아가는 순백의 사표를 상상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너무나 흐물거리며 볼품없던 나의 사표. 정확히 말하면 던진 게 아니고 디지털 서명으로 전송한 거지만.
백수 N일차
가만히 있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는 요즘 시국에 삼시세끼 밥벌이를 거부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그렇게 금토일, 금토일, 두 번의 주말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금토일을 앞두고 있다.
여전한 갈증
어깨 걸고 나갈 동료도 소속도 없는 나에게 매일매일은 자유로워야 했다. 공감과 배려라는 감정은 배운 적이 없는 것처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어야 했다. 평일과 주말이란 구분은 내가 사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평등해야 했다. 세상에 마음을 두는 순간 평일과 주말의 균형은 흘러내린다. 최대한 그렇게 의식하며 평일과 주말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당근을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당근송이 자동 재생 되는 것처럼 마음가짐과 달리 평일과 주말의 경계는 더욱 짙어졌고 여전히 주말을 향한 갈증에 목이 말랐다. 그 무시무시한 월요병은 자연 치유되고 요일의 귀천이 사라질 줄 알았건만, 백수에게도 평일과 주말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 간다. 심지어 과거에 앓았던 그 월요병과는 또 다른 증세의 월요병이 생겼다.
왜 그럴까
백수인 내가 주말을 왜 기다리는 것일까? '놀면 뭐하니 보려고?'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평일에 '일하는 사람'들이 주말에는 '나처럼 쉬는 사람'들로 변한다.
주말에 이런 '쉬는 사람'들 속에 껴있으면 내가 백수라는 것을 잠시 잊고 어떤 안도감과 소속감이 느껴진다. 원시시대부터 현대 사회까지 인류가 가장 가치를 두고 갈급한다는 그 소속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 소속감이라는 것을 주말에 채우는 것이다.
더 지독해진 월요병
주말이 기울어 갈 때쯤부터 고개를 쓰윽 내미는 불안하고 복잡스런 마음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월요병은 더 독해졌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소속감이란 보물은 월요일이란 검은 숫자의 저주를 만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는데 그 즉시 '넌 다시 혼자야'라고 속삭이는 환청이 들리며 공허함이 마음속에 메아리친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만성적으로 겪고 있던 월요병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의 월요병이 시큰한 편두통과 양을 100마리 이상 세야 하는 불면증이라면, 지금의 월요병은 심한 몸살을 앓은 후 겨우 죽 한숟가락을 뜨며 나오는 단내 나는 한숨과 무기력, 그 어디쯤과 닮은 병세이다.
구부러진 백수의 길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이번 생은 처음인 것처럼 나 역시 이번 생이 처음이고 더더욱 백수의 길은 초행길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입버릇처럼 '퇴사할 테다!!'를 외치며 살았고 백수의 삐딱한 삶을 막연하게 동경했다. 그래서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당장 몇 달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데, 내가 걷는 백수의 길은 구불구불하고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아 숨이 불규칙하다. 지금 나라는 백수는 내가 보고 듣고 갈망하던 그 백수님의 삶과는 뭔가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단순히 '현타 왔다'라고 퉁 치기에는 복잡미묘하다.
불안했던 부캐 유니버스
나름의 안식년을 보내고자 하는데 내가 찾던 안식은 어디에도 없다. 당분간 토굴 속에서 쑥과 마늘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란 굴착기가 나타나 들쑤셔 놓는다. 요 몇일 '나에게 소속감이 이렇게 중요했나'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질문 한 번에 백번 넘게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세상적인 것에 타인보다 자유롭다 여겼건만 이쯤 되면 그 반대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사회 관념에 더 절어 있는 내자신을 세련되게 포장하기 위해 그렇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시티보이 & 피스 메이커'를 부캐로 잡고 버텨 왔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져가던 나의 부캐 유니버스. 언제부턴가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던 나의 부캐.
이제야 조금 알겠다. 백수를 해보니 알겠다. 뭐 하나는 건졌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과 들쑥날쑥한 감정은 분명 진보이다. 백수 해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