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씨일기 Mar 25. 2024

유기견일까 3

매일 쓰는 짧은 글: 240325 



하는 일 없이 바빴다는 게 이런 걸까. 뭐 특별히 정해진 것도 없는데 하루는 해야 하는 일들로 꽉 차서 한동안에 공원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는 하얗고 조금은 겁에 질려있는 모습의 그 친구가 계속 생각이 났다. 건강은 할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오늘은 날이 다시 조금 추워졌는데 이슬은 맞지 않고 잠은 자고 있을까. 



그러다 오늘 며칠 만에 여유가 생겨 늘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대에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공원 구석에 놓인 선의의 밥그릇을 먼저 체크하니 밥은 없어진 지 오래고, 물그릇에도 나뭇잎만 무성히 쌓여 있었다. 이제는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 며칠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생겨서 이제는 이 공원에 나타나지 않는 건지. 공원을 빙빙 돌면서 운동을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 가는 길에는 다이소에 들러 조그마한 강아지 사료도 사두었다. 내일 공원에 오면 빈 그릇에 조금이라도 채워줘 한 끼라도 배불리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러다 저녁 산책을 다녀온 아버지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요 며칠 공원을 나가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성실히 밤 산책을 다니고 계셨다. 그러다가도 종종 그 친구의 모습을 보았는데, 배가 홀쭉해지고 조금은 야윈 모습으로 사람을 경계하며 다녔다고. 다가가서 상태를 보려고 해도 빠르게 도망을 치니 어떻게 뭘 할 수가 없었다고. 그러다 오늘 다시 가보니 119 마크가 쓰여있는 동물용 케이지를 들고 그 강아지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아마도 결국 누군가 신고를 해서 유기견 보호소 같은 곳에서 포획하러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시더라. 



오늘은 봄처럼 포근했던 어제와 다르게 아침부터 날도 흐리고 점심깨부터는 비도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다. 바람도 심심치 않게 불고 공원에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도 아버지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딱 그 타이밍에 그 강아지 친구의 구조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어찌 되었던 당장의 안전과 목숨은 구했구나 싶어 안심이 되다가도, 이 친구의 향후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는 실질적으로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슬픔과 자책감 등의 감정들도 같이 휘몰아쳤다. 그냥 걱정만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구나 싶어서. 그래도. 그래도, 오늘은 배불리,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겠구나 싶어 다행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공원에서 안 보이게 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로도 내내 마음이 쓰였을 텐데, 운이 좋게도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확인을 받은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지금 있는 그곳에서는 많이 무서워하고 있을까. 밥이라도 조금은 편히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못 하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에 떨었던, 잠시 스쳐간 친구가 늘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앞으로도 공원에서 혼자 익숙한 길들을 걸을 때에도 시선은 공원의 구석구석들에서 그 친구의 모습을 찾게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올려다 본 달이 밝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