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에게
지금 아빠 앞에는 엄마가 누워 자고 있어.
엄마 팔뚝 위로는 레버를 누르면 무통 주사가 흘러들어오는 액이 걸려있다. 독립운동을 했어도 비밀 기지를 불지 않았을 네 엄마는 고통을 꽤 잘 참는 편인데, 제왕절개 수술이 그렇게도 아픈가 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에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해. 다만 마취가 깰수록 점점 통증이 찾아오는 것 같더라. 무통을 한 번에 당겨 쓰고 고통을 원리금처럼 상환하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좋은 일만 가득히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에 빈 방이 생겨 엄마는 일인실로 옮겨졌다. 시원한 에어컨과 통창이 반겨주는 널찍한 병실에서 엄마도 기분 좋은지 종일 웃고 있네. 물론 아빠도 다리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소파와 널찍한 냉장고가 생겼다. 이번 여름휴가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호캉스를 즐기게 될 줄은 몰랐지. 엄마는 밥맛이 좋은지 싱거운 병원 밥도 싹싹 긁어먹고 있다. 매 끼니 미역국이 나오는데 미역국 킬러답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릇을 비워내네.
오후엔 엄마와 함께 키티를 만나고 왔어. 너는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찡긋거리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들리든 말든 신나게 너를 불렀단다. 아빠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처럼 플라스틱 창에 손바닥을 치며 키티야, 하고 경상도 억양으로 불렀지만 넌 새근새근 잠만 자더라. 너도 새로운 환경에서 피곤했을 테니까 그랬을 거야.
잠깐의 면회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네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아빠는 손으로 거울에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네가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좋으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이 들더라. 그래도 나보단 엄마를 닮아야 할 텐데, 괜히 투덜거렸지만 내심 기뻤던 건 사실이야.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엄마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모유 수유를 연구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한글로 검색되는 유튜버는 죄다 섭렵해서 해외 유튜버를 찾을 기세야. 앞으로 키티 밥은 엄마가 직접 먹여주고 싶다는 게 엄마 마음이라나. 아빠는 모유 수유를 신성시하고 분유를 죄악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동의하지 않지만, 엄마와 네가 여건이 주어지는 만큼의 그 어디에선가 같이 밥 먹으며 행복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셋 모두 어쨌거나 몸도 마음도 건강하면 좋겠어.
2023. 08.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