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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키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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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Aug 27. 2023

2. 뜻밖의 호캉스

키티에게

지금 아빠 앞에는 엄마가 누워 자고 있어. 


엄마 팔뚝 위로는 레버를 누르면 무통 주사가 흘러들어오는 액이 걸려있다. 독립운동을 했어도 비밀 기지를 불지 않았을 네 엄마는 고통을 꽤 잘 참는 편인데, 제왕절개 수술이 그렇게도 아픈가 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에도 큰 문제는 없다고 해. 다만 마취가 깰수록 점점 통증이 찾아오는 것 같더라. 무통을 한 번에 당겨 쓰고 고통을 원리금처럼 상환하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좋은 일만 가득히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에 빈 방이 생겨 엄마는 일인실로 옮겨졌다. 시원한 에어컨과 통창이 반겨주는 널찍한 병실에서 엄마도 기분 좋은지 종일 웃고 있네. 물론 아빠도 다리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소파와 널찍한 냉장고가 생겼다. 이번 여름휴가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호캉스를 즐기게 될 줄은 몰랐지. 엄마는 밥맛이 좋은지 싱거운 병원 밥도 싹싹 긁어먹고 있다. 매 끼니 미역국이 나오는데 미역국 킬러답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릇을 비워내네.


오후엔 엄마와 함께 키티를 만나고 왔어. 너는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찡긋거리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우리는 한참 동안 들리든 말든 신나게 너를 불렀단다. 아빠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처럼 플라스틱 창에 손바닥을 치며 키티야, 하고 경상도 억양으로 불렀지만 넌 새근새근 잠만 자더라. 너도 새로운 환경에서 피곤했을 테니까 그랬을 거야. 


잠깐의 면회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네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아빠는 손으로 거울에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네가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좋으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이 들더라. 그래도 나보단 엄마를 닮아야 할 텐데, 괜히 투덜거렸지만 내심 기뻤던 건 사실이야.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엄마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모유 수유를 연구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한글로 검색되는 유튜버는 죄다 섭렵해서 해외 유튜버를 찾을 기세야. 앞으로 키티 밥은 엄마가 직접 먹여주고 싶다는 게 엄마 마음이라나. 아빠는 모유 수유를 신성시하고 분유를 죄악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동의하지 않지만, 엄마와 네가 여건이 주어지는 만큼의 그 어디에선가 같이 밥 먹으며 행복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셋 모두 어쨌거나 몸도 마음도 건강하면 좋겠어.


2023.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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