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퇴근길에 차가 더 막힌다. 분명 퇴근길인데 서울에서 대전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1시간 30분이던 퇴근길이 2시간 30분이 되는 마법을 경험했다. 계속되는 브레이크 연주에 나의 발목도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삐요~ 삐요~ 삐요~"
나보다 빨리 가던 차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비 오는 길에 차 사고가 났구나...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오늘 집에 빨리 가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 7시 30분이었다. 빨래를 돌리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나니 9시 뉴스가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모든 방의 불을 끄고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갔다. 그렇게 30분 후 나는 깨끗한 몸으로 안방에 들어갔다.
"그래. 9시 30분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저녁 9시 30분
와이프는 오늘 힘들었는지 먼저 침대에 누웠다. 한 명은 침대에 누워있고, 한 명은 침대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하다. '화천대유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50억, 장제원 국회의원 아들 노엘,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냉장고 중고거래에서 1억을 넘게 발견한 사람이 돈을 돌려준 내용'까지...
그래도 다행이다. 훈훈한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아침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을 듣는다. 나는 출근길 내 차 안에서, 와이프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각자의 아침 시간은 다르게 시작하지만 공통된 무언가가 있어서 그런지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아내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힘든 서울살이 속, 힘들지만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부부, 아니 내 아내가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분위기 잡지 말라는 듯 위에서 아기인지, 강아지인지 모를 괴생명체가 쿵쿵 소리를 낸다. 이럴 때보면 매일 오징어게임을 하나보다. 이럴 때는 40층 꼭대기 층에 사는 누나가 부럽다.
'꽃 왕관 만들기'에 힐링하는
저녁 9시 30분
지난 주말에는 아줄레주 갤러리에서 이번 주부터 진행하고 이는 이지은 작가님 전시회를 다녀왔다. 3년 전에 국제아트페어에서 알게 된 작가님인데, 그 때부터 작가님의 작품이 우리 부부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는 마음들이 그 그림을 보는 순간에는 사라짐을 느꼈다. 초, 중,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그토록 많은 작품을 책 속에서 보고, 시험도 보고 했었는데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렇게 매년 2~3차례 전시회를 하시면 늦더라도 꼭 그림을 보러 가곤 했다. 이번에는 늦지 않으리라 다짐했기에, 전시회가 시작하는 날 당일 10시에 갤러리를 찾았다. 전날까지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속이 답답했었는데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세상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갤러리에서 한동안 '꽃 왕관 만들기' 작품을 보고 서있었다. 멍하니...
꼭 꽃 왕관을 만들고 뛰어가는 강아지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가 우리 부부 같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세상 풍파가 우리를 때릴지라도, 가슴 속 깊이 작지만 단단한 동화 같은 아이의 감정을 잃지 않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