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때 챙겨놓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장장 11개월이라는 길고 긴 대학원 지원 과정이 끝났다. 2주 전 첫 오퍼 레터를 받았고, 추가적으로 두 번의 합격 레터를 받았다. 오퍼 레터를 받고 나니 백수라는 사실이 와 닿는다. 평일 낮에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 출국 전 약 5개월의 기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월은 약속도 많고, 춥고, 해도 짧기 때문에 뭔가 정신이 없다. 2월은 1월이 벌써 다 지나갔다니!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하지만 3월은, 유년시절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복된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 때문인지 마음이 싱숭생숭 두근두근하곤 한다. 게다가 해도 점점 길어지고 날씨도 점점 풀리기 때문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달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새로운 시작을 위해 큰돈을 썼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코딩 클래스와 운동을 등록했기 때문이다. 각각 42만 원, 14만 원씩, 오늘 하루에만 무려 56만 원을 지출했다. 백수에게 56만 원은 너무나 큰 출혈이지만 꼭 필요한 지출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유가 너무 찌질하긴 하지만, 이 이유가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나는 뭐든 모티베이션이 있으면 추진력이 생긴다. '몸이 약해져서 운동을 해야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났다. 하지만 약 2주 전 첫 학교로부터 합격 소식을 듣고 나니 미국 생활에 대해 실질적인 걱정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스포츠를 중시하고, 운동을 잘하고 몸이 좋으면 인종차별을 '덜' 받는다는 글을 많이 읽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일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타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지만 2년이라는 시간과 거금 투자하는 대학원 생활에서만큼은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미국 생활에서의 빠른 적응을 위해 운동을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런저런 운동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의 대학원 준비 과정은 내 예상보다 길고 몹시 고됐다. 몇 달간 하루 종일 영어공부를 하고, 또 몇 달간 하루 종일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끝없는 불확실함에 고통받으며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다 보니 살도 많이 빠졌고, 체력도 많이 약해졌다. 때문에 최소 주 3회 주기적으로 운동 함으로써 건강한 몸과 힘을 되찾고자 하였다.
지속 가능한 정신력이란 말이 웃기긴 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 힘들었다. 나는 대개 긍정적이긴 하나, 걱정이 많고, 불안함을 쉽게 느낀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대할 땐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그들의 모든 경험이 다 좋은 양분이 될 것이고, 모든 결정이 결국엔 옳은 결정일 것이라 진심으로 믿고 응원한다. 하지만 나를 대할 때에는 꽤 부정적이다. 모든 선택에 걱정이 앞서고, 나 자신에게 확신이 부족하고, 오늘의 결정이 후일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매사에 이렇게 어두운 것은 아니고, 대체로는 기분이 좋다. 이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험상 운동을 하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고 내 앞길에 따뜻한 햇살이 포근한 카펫처럼 깔려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입학이 확정되면 하루빨리 운동을 시작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테니스, 수영, 헬스, 골프, 필라테스, 사격 등등 배우고 싶은 스포츠가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 요가를 선택한 데에는 수업료, 위치, 시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비교적 저렴한 수업료
우선 미국에서도 꾸준히 할 수 있을 운동 중에, 일주일에 최소 3번 주기적으로 할 수 있을 운동을 찾아보았다. 나는 프리다이빙을 아주 가끔씩 하고 있지만, 돈도 비싸고 접근성도 낮아 주기적으로 하기엔 힘든 운동이었다. 헬스장은 비교적 저렴했지만, 새로운 운동을 배우려면 PT를 등록하라는데 그러기엔 너무 비쌌다. 가장 배우고 싶었던 테니스는 월 2회 레슨에 28만 원이었다. 다른 운동들도 백수가 한 달 운동으로 지출하기엔 너무나 가격대가 높았고, 운동도 돈이구나 하는 생각에 슬펐다. 그러던 중 당근 마켓에서 동네 요가원을 추천하는 글을 읽었고, 가격을 문의해보니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물론 비교적).
2. 가까운 위치
운동을 하고 싶어도, 거리가 멀면 몸의 귀차니즘이 뇌의 의지를 이긴다. 따라서 나는 무조건 도보 10분 거리 안에 있는 운동 시설을 찾아보았다. 요가원, 필라테스, 헬스장, 볼링장 등 도보 10분 내에도 많은 운동 시설이 있었다. 이럴 땐 정말 서울 최고! 도시 최고!
3. 시설과 운동 인원수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뇌리에 박힌 책 제목이다. 저렴한 예산에, 좋은 시설에서 운동하고 싶었다. 근처에 종합 스포츠 시설이 있었는데 가격은 제일 저렴했지만, 너무 노후한 시설이었다. 기왕 운동할 거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하고 싶었다. 그중 당근 마켓에서 추천받은 요가원의 사진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헬스장만큼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도 않을 것 같고,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선택한 요가원은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한 '요가라마 홀리스틱'이다. 도보 약 10분, 시설 몹시 좋음, 주 3회 월 14만 원. 알아본 운동 중 저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비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비싼 수강료는 빼먹지 않고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기도 하니 괜찮다. 내부 시설도 정갈하고 평화롭다. 나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비록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있는 공간이라도 그랬으면 한다.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싫어하는 지역이 홍대, 강남, 이태원, 건대이다. 워낙 복잡하고 사람이 많기에 되도록이면 발도 들이고 싶지 않다. 아무튼 그런 내게 요가라마 홀리스틱의 내부 분위기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깔끔하고, 조명이 밝지 않으며, 책과 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는. 첫날이어서 이것저것 만져보기엔 눈치가 보여 자중했지만, 내일은 좀 더 일찍 가서 책도 읽어보고 싶다.
워낙 유연성이 부족하고, 운동을 아예 안 한 지 좀 된 몸이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능력에 맞게 따라 할 수 있게 알려주시기 때문에 할만했다. 물론 부들부들 떨리긴 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헬스장 운동 때는 종종 눈앞이 캄캄해지고 일어나지 못하곤 했다!). 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고, 굳은 몸을 쭉쭉 늘이다 보니 다른 잡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냥 멍 때리면서 선생님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동안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았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운동을 찾은 것 같다!
4주간 늘어나라 고무고무가 되긴 힘들겠지만, 굳은 어깨와 등을 피는데 집중해보아야겠다. 물론 마음 수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