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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써머 Aug 23. 2020

관심 가는 사람이 생겼다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관심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 그냥 일로 만난 사람이고, 겨우 세 번 봤다. 그 세 번도 나랑 직접적으로 같이 일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한 공간에 있었고 업무적인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 사람에 대해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관심이 간다. 그 사람이 좋아서 마음이 커졌다기보다 (사실 커졌다기보다 지금은 커지는 중이긴 한데) 그냥 주변에 또래 남자가 없어서, 그런데 괜찮은 분인 것 같아서, 내가 지금 혼자 살고 시간이 많아서 스스로 마음을 키운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뭐 다 그런 식으로 썸도 생기고 마음도 주고받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도 거의 명제처럼 받아들이지 않나.


TV나 연애 칼럼을 보면 남자들은 ‘먼저 대쉬하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래야지,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이야기다.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의 남자직원에게 호감을 품었다. 그런데 그 남자직원이 어느 날 돌연 퇴사를 해버렸다. 당연히 그를 오래 볼 줄 알았던 그녀는 당황했고, 진즉 말을 걸어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대응책을 모색했다. 우선 현존하는 모든 SNS에 그의 이름을 검색한다. (아는 것은 이름뿐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그 계정들을 샅샅이 스캔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부터 그녀의 용기와 기지가 빛을 말하는데, SNS에 얼굴 사진을 올리지 않은 모든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내용은 “내가 이런 사람을 찾고 있는데 혹시 니놈이 그놈이냐” 였던 것 같다. 몇 명에게서 답장을 받지만 모두 그놈이 아니었다. 그녀는 실망한다. 방법이 없다.


이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그렇게 중요한 사안을 왜 이제 이야기했냐”며 펄쩍 뛴다. 그렇다. 매사에 탐구심이 넘치고 추진력이 끝장나는 지인의 직업은 ‘기자’였던 것이다. 지인은 자신의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 커피전문점의 본사 사장 연락처를 묻는다. “헛소리하지 말고 네 일이나 똑바로 해 이 자식아!” 라는 타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팀장님,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결국 기자는 본사의 부사장 연락처를 알아내고, 부사장에게 연락해 사랑앓이를 하고 있는 가엾은 여인의 사정을 들려주고는 그의 정보를 묻는다. 직원의 정보를 함부로 알려줄 수 없었던 부사장은 직접 그에게 연락한다.


마침내 사건이 종결된 후 내가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커피전문점에서 근무하던 그는 자신의 오랜 꿈을 놓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했고, 지금은 다른 공부를 이어나간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퇴사한 회사의 부사장의 연락을 받고는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으나 지금은 제가 공부를 해야 해서…” 라는 말을 남겼고, 그 소식을 전해-전해-전해 들은 내 친구는 비로소 깨끗이 포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 ‘어마어마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곱씹을수록 참 ‘어마어마하다’고 느낀다. 카페에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다가 나는 그녀에게 연락해 “넌 정말 어마어마했구나” 하고 진심어린 칭찬을 한 후, 나의 상황에 대해 흘렸다. 친구는 “그럼 한 번 연락해봐” 한다. “관심 있다고. 밥이나 먹자고”. 진짜 그럴 용기가 있는 그녀는 참 쉽게도 이런 말을 한다.


나도 내가 그럴 용기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격인지, 용기인지, 마음의 크기 문제인지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업무용 카톡으로 대뜸 연락해서 “안녕하세요, 전데요, 제가 그쪽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물을 자신이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정말로 원치 않는 나를 제압하고 나 대신 이런 카톡을 보낸 다음에 그가 “없는데요” 대답하면, “저 나쁜 사람은 아닌데 혹시 밥이나 한 번 먹을래요?”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남녀들이여, 그대들은 얼마나 용감한가. 나는 거절당할까 두려운 게 아니다. “여자친구 있어요” 라는 대답을 들은 뒤 들 민망함이나 머쓱함이 두려운 것도 아니다. (이런 표현은 옳지 않은 것 같지만) ‘헤픈 여자’처럼 보일까봐 걱정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건 분명 엄청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용기가 없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안녕하세요” 하고 말문을 열 자신이 나는 없다. 사랑을 쟁취하고 인연을 이어나가는 건, 분명 먼저 “안녕하세요”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매력이니까. 그러니 내가 ‘이렇게나 매력이 넘치는데도’ “안녕하세요” 할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쭈그리처럼 혼자 카페에 앉아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A4 두 장을 채울 이 글을 쓸 시간이면 백 번의 “안녕하세요”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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