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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말룡 May 22. 2017

상처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도쿄 여행

건강이 최고다! 양고기는 맛있다! 휴족시간은 약이 아니다!

밝은 날 다시 찾는 우에노 공원. 본격적으로 내부 시설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도쿄 국립박물관이었다. 도쿄 국립박물관과의 첫 대면은 뭐랄까 확실히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보다는 뭔가 규모의 웅장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되려 후쿠오카 시립박물관이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 기분 그대로 실제 국립박물관의 내부 전시품들은 참으로 볼 것이 없었다. 국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고, 정말 일본은 근현대 이전의 역사는 볼 것이 없는 것이 었을까? 되려 아시아관이 더 눈에 들어오는 그런 국립박물관이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모습, 화려함 보다는 수수함이 느껴진다.


도쿄 국립박물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도쿄대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 최고의 대학인데다 근처에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아직 서울대학교 정문도 못 가봤는데 도쿄대학 방문이라니 내심 여길 꼭 가보긴 가봐야 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느덧 나의 빠른 발걸음은 도쿄대학 내부에 있었다.(사실 업계 종사자로서 도쿄대학 보다 먼저 도쿄대학병원을 먼저 들른 건 함정). 일본의 대학 캠퍼스는 뭐랄까 우리나라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필두로 한 일대의 상권 형성도 이루어져 있지 않았고, 실제 캠퍼스에는 그렇게 사람이 북적북적 거리지 않았다. 내가 갔던 그 타이밍에 때마침 고등학생들처럼 보이는 여러 인원들이 캠퍼스 내부를 줄지어 견학하고 있었다. 꼭 우리가 고2나 고3 수능 치기 전에 자기가 목표로 했던 대학 캠퍼스 견학하는 그 비슷한 프로그램이라 여겨진다. 캠퍼스 내부의 검도관 같은 곳에서는 검도부의 훈련이 진행되는 중이었던지 큰 소리가 들렸었다. 건물들은 누가 봐도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아주 유지 관리가 잘돼 보였다.


서울대학교도 못 가봤는데 도쿄대학이라니..


도쿄대학을 나왔다. 이때가 오전 11시를 조금 넘었는데 지나가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죄다 스마트폰으로 탄핵 판결을 라이브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11시 23분쯤에 탄핵을 인용한다는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대행의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나자마자 나는 ‘아! 야스쿠니 신사로 가야겠다’ 싶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원래 여행 계획에도 없었다. 사실 이놈의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어 여행 가이드북에도 안 들어가는 곳 아닌가?(못 들어가는 거기도 하지만) 하지만 괜히 가야겠다 싶었다. 도대체 거기가 뭐길래 맨날 거기에 망할 일본놈들이 허구언날 참배를 하는지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싶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실로 대단했다. 내가 이때까지 일본에서 보아왔던 신사중에서는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이놈의 일본 사람들은 고대, 중세사는 내세울 게 없고 근현대사만 자랑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남녀노소 젊고, 늙고의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잖이 요즘 속된 말로 ‘극혐’(극도로 혐오하다)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특히 중고생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저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사람들을 기리는지 알고 저기에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일본은 참 역사교육을 제대로 안 시키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뭐 우리 나라라고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있겠냐 만은..


야스쿠니 신사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일본의 어느 신사보다 웅장했다.


야스쿠니 신사를 나와 구글 맵으로 인근 일대를 검색했다. 신사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일왕이 거주하는 일본 천왕궁이 있었다. 그 내부를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천왕궁을 빙 둘러싼 그 주변 일대를 여러 사람들이 러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흡사 영도 태종대 순환도로에서 학생들이 마라톤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그 정도로 일본 사람들에게 천왕궁은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와도 가까이 있는 위화감이 없는 그런 곳이라는 반증이겠지? 그런 생각도 잠시. 또다시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했다. 오늘 도쿄의 주요 지역들을 다 둘러보고 내일은 조금 여유롭게 요코하마에 가겠다는 다소 무리한 목표 때문이었다.


지나가다가 마주친 도쿄역의 모습, 흡사 과거 서울역이 연상된다.


다음 목적지는 시부야다. 시부야.  그 이름은 한국에서도 많이 들어봤었다. 나의 학창 시절 보아가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시부야 109 타워에 사진 걸리고 했던 그 시절. 나도 언젠가는 저 젊음의 메카에 가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게 10년이 지나버렸다. 보아는 아직도 아줌마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왜 아저씨가 되어버린 걸까. 좌우지간 시부야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첫인상은 ‘아! 사람 진짜 많네’였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많았다. 시부야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부리나케 걸어 다닌 영향으로 극도로 허기짐이 몰려왔다. 돌아다니다 보니 식당은 많았으나 일본어가 안 되다 보니 아무 곳이나 들어가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또 아침과 같이 부실 패스트푸드 식사를 먹을 수는 없어 찾고 찾던 중에 아무 라멘집에 들어갔다. 일본에는 자판기로 주문하는 그런 가게들이 많았는데 이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메뉴들이 일본어로 쓰여있었지만 무슨 종류의 라면인지 이해할 겨를도 없이 이번엔 무조건 곱빼기다!! 곱빼기를 눌렀다. 곱빼기인 줄은 어떻게 알았냐고? 쓰여 있는 글자는 똑같았는데 가격이 달랐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건물들은 다 보인다
맛도 맛이지만 양도 너무 많아서 매우 만족스러웠던 라멘


정말 라멘을 맛있게 많이 먹었는데, 먹고나니 이젠 몸이 너무 무거워서 조금 나른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둘러볼 건 둘러봐야 하니까. 쇼핑의 메카인 시부야의 거리를 열심히 싸돌아 다녔다. 사실 이 시부야 거리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남포동 또는 서면과 같은 느낌이었고, 그 유명한 타워레코드 역시 한국 가수 전용코너가 아주 큼직하게 되어있었지만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점점 위로 걷다 보니 메이지 신사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발바닥이 조금씩 저려오기 시작했다. 메이지 신사는 그래도 일본 입장에서는 꽤 중요한 신사일 텐데 걸어가는 그 길이 개인적으로는 불편했다. 물론 내가 발바닥이 저려오고 있었던 터이기도 했지만 좀 이런 공간은 흙길로 조성하면 좋았을 텐데 사람 걷기 힘들게 자갈 같은 것들로 조성되어 있어서 참으로 까끌까끌한 기분으로 신사 내부를 둘러보아야 했다.


메이지신사 내부의 일부지역은 공사중이었다.
메이지신사는 사진과 같이 바닥이 자갈 비슷한 것으로 이루어져서 밟으며 구경하기가 불편했다.


메이지 신사를 다 둘러보고 나니 내 발바닥 통증은 절정에 이르렀다. 너무 발바닥이 아파서 20분 정도 쉬어도 봤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온천이라도 하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서, 원래 여행 목적지에도 있었던 대형 건담이 있는 동네! 오다이바로 넘어갔다. 하지만 오다이바에 도착해서도 계속된 발바닥 통증은 사람을 걷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었다. 후지 TV 본사 건물이나 오다이바의 관람차도 조금 제대로 예쁘게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무조건 오오에도 온천으로 향했다.


미래 지향적인 건물 디자인 후지TV 본사의 모습(정면을 담고 싶었는데 발바닥이 아파서 그러질 못했다)
멀리서 나마 보이는 오다이바 관람차


오오에도 온천에 도착하니 한국인 관광객이 꽤 보였다. 하지만 보이거나 말거나 온천에서 나눠준 유카타는 입는 방법도 몰라 대충 입고 오오에도 온천 내부를 구경할 정신도 없이 그냥 온천으로 입수했다. '휴우~~ 아! 살겠네' 사실 온천이라곤 했지만 온천보다는 약간 조금 큰 사이즈의 대중탕 같은 기분이었다. 실내 온천과 실외온천을 번갈아 가며 약 2시간가량이나 온천욕을 즐기고 나왔음에도 발바닥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아 이러다가 우째 되는 거 아냐?’ ‘아 어떡하지?’ 이제 여행이고 뭐고 일본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택시 타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발바닥은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오에도 온천, 들어갈때는 밝았다.
나올때는 깜깜. 그 정도로 온천욕을 오래했다.


발을 질질 끌다가, 깽꺵이로 뛰다가 그렇게 생쇼를 하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휴족시간을 발바닥 발목, 종아리 할 것 없이 붙이고 내일은 제발 좋아져라고 기도까지 하면서 잠들었다. 그리고 뒷날, 발바닥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통증 때문에 나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편하게 갈 수가 없었다. 살아생전에 일본 도쿄를 얼마나 와보겠냐 만은 힘들게 시간 내서 온 도쿄의 토요일을 나는 그저 숙소의 침대에서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읽을만한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나마 스마트폰이라도 있어서 폰만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너무 허탈했다. 그러면서 이내 드는 생각이 ‘아! 나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나도 이제 마냥 젊지는 않구나’를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무조건 한꺼번데 다 둘러보겠다는 그런 욕심은 버리고 조금은 여유가 있는 그런 여행.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머리와 가슴으로만 느끼는 그런 여행. 무조건 적으로 눈에 다 넣으려고 하진 말아야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오지도 않는 잠을 아무리 자보아도 밤이 되도록 쉬어도 내 발바닥 통증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웃기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급하게 응급처치를 위해 구입한 종류별의 휴족시간.
발에서 휴족시간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움직이지를 못하니 무엇을 사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픈 발바닥을 이끌고 숙소에서 10M 거리에 있는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는 식당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정말 배가 고팠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그 식당은 양고기 집이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이 너무 웃긴 것이다. 발바닥은 아파서 하루 종일 못 움직이는데 배는 너무 고프고, 그래서 힘들게 나와서 기껏 들어간 집이 양고기 집이라니. 내 32살 인생에 처음으로 타지에서 혼자서 고기를.. 그것도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다른 일본인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맛있었다. 양고긴지 소고 긴지 그저 꿀맛이었다. 내친김에 아사히 생맥주도 걸쳤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먹자 먹어!!'


급하게 들어갔던 식당이 양고기 집이였다니.. 이날 나는 혼자서 양고기 파티를 열었다.


혼자서 양고기를 구워 먹은 이 추억이 사실 나의 3박 4일 도쿄 여행의 전부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다.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고 지워진다고 해도, 절대로 혼자서 양고기를 먹은 이 기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숙소에 들어온 나는 그렇게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통증이 지속되는 그 발을 이끌고 무사히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이내 김해 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집에 가자. 병원가자.


이번 여행은 참 탈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구글 지도만 있으면 그렇게 잘 찾을 줄로만 알았던 지리도 정말 많이 헤맸고, 욕심은 또 얼마나 많이 부렸는지 40km 가까이를 걸었던 덕택에 발바닥은 아작이 나고, 그 어렵다는 혼자서 고기 구워 먹기도 경험한 3박 4일의 도쿄 여행. 여행을 통해 느껴셔 가져가는 것보다 아쉬움이 더 큰 여행이지만 우선은 일단 살아는 있다는 것에, 걸을 수 도는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기회가 된다면 머지않아 다시금 도쿄를 방문해 보고 싶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여유롭고 가볍고, 그리고 아프지 않게 여행하고 싶다.


결론은 건강이 최고다! 배고플 때 양고기도 최고다! 휴족시간은 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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