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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말룡 Oct 11. 2016

비행기가 이륙하다

1년 만에 다시 작성해보는 입국신고서

아침 7시 30분 에어부산 비행기였기 때문에 경남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부랴부랴 새벽에 일어나서 김해경전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6시 15분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머릿속으로 마인드 맵 했던 것처럼 1층에서 먼저 인터넷 환전 신청한 돈을 찾고, 2층에서 항공권을 발권하고, 3층 수화물센터에서 포켓와이파이를 찾고, 바로 2층으로 다시 내려가 출국심사를 받았다. 머릿속으로 마인드맵을 한 이유는 짧은 시간에 해야 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날 밤부터 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출국심사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작년에 오사카 여행 출국 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자동출입국심사를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바로 통과.. 는 못했다. 멍청하게 자꾸 엄지손가락을 양쪽 지문인식기에 대고 있었다. 나갔다 다시 들어와서 검지 손가락을 꾸욱 누르고서는 빠르게 통과하였다.


이제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면세점은 열기 전이었고, 몇몇 매장은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배가 너무 고파서 공항 내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평소 편의점 패스트푸드를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공항 내 편의점에 있는 상품들은 왜 더 맛있어 보이는 걸까. 여러 가지를 사서 먹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더부룩한 속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에그 토스트인지 하는 것을 사서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새벽부터 준비했던 피곤을 녹여주는 그런 인스턴트의 맛이었다. 나 말고도 그 편의점 앞에서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덕분에 묘하게 외롭지 않게,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쾌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뒤 입국 기록서를 작성하라고 준다. 작년에 작성했었지만 당연히 까먹었기 때문에 미리 여행박사에서 주는 입국 기록서 안내(교통패스를 온라인으로 구입하니 동봉해서 주더라)를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해서 갔다.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비행시간이 짧아서 기내식은 없다고 하는데, 역시나 없었다. (왜 기대했던 걸까?) 그 대신에 에어부산이라고 적힌 종이컵에 오렌지 주스를 줬다. 굉장히 떫은맛이었다. 분명 오렌지 주스 아니고 제주감귤 일 것이다. 제주감귤 같은 오렌지 주스를 반모 금 먹고는 부랴부랴 입국신고서를 썼다. 작년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주소 쓰는란은 어찌나 짧은지 싶다. 아니면 내가 일본어를 크게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어비앤비에서 묵는 여행자들은 입국 심사할 때 조금 더 엄격하게 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호스트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끝까지 꼼꼼하게 기입했다. 그래서 칸이 더 모자랐는지 모를 일이다.



입국신고서를 다 작성하고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바다 위에 있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배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2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런 사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봤을 때는 인사를 "아저씨 안녕하세요"라고 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입국해서 집에 오실 때에는 항상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생선 몇 박스들과 어머니에 두툼한 현금을 당당하게 건네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엄마, 아빠가 이번엔 어디 갔다 오신 거야?"

"인도네시아."

아버지께 직접 물어보지 못할 정도로 우린 꽤나 어색한 사이였다. (그래도 누나는 이뻐라 하셨다) 아버지가 집에 올 때면 쓰다 남은 외국 주화들을 꽤 들고 오셨는데 어린 시절 나는 "엄마 이거 우리 모아놓자. 그러면 10년 뒤에는 값어치가 엄청 뛰어서 부자 될 거야!!"라고 말했다. 뭐 돌이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게 동전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 이사 오면서 그 동전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 내가 버렸을 것이다. 때때로 이사는 오래된 기억을 정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때마침 "잠시 후 우리 비행기는 후쿠오카 공항에 접근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참... 가깝긴 가깝구나.' 그러고 보니 이런 흐름을 글(회상 이후 때마침으로 이어지는)을 꽤 자주 접했나 보다. 나도 자연스럽게 써지는 걸 보면. 하지만 진짜다. 진짜 어릴 적 회상이 끝나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진부한게 안 먹힌 시대에 이런 진부한 전개가 있다니.. 드디어 일본이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일본. 이번에는 후쿠오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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