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말룡 Nov 09. 2016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라지?

너무나도 많은 요리 정보, 그대로 따라만 해도 내가 요리사

여행기 이후에 글쓰기 소재 아이템이 떨어져 이제는 무엇을 써야 될지 고민했다.

그 고민이 한 달 정도 되다 보니 브런치 방문자수는 하루에 10명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뭐라도 써야 돼 뭐라도 써야 돼"

그래서 내린 결론, 여행에 이은 소재는 '나'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나'라 함은 혼자 사는 독신의 그저 그런 소비력을 갖춘 개인적이면서 자유분방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살고 있지만 현재의 나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 하나쯤은 할 수 있는 인간.이라 정의하여 그 인간의 일상 속 생각들을 가볍게 풀어나가고 싶었다.


자취 생활한 지가 어언 7년 차이다. 25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자취생활은 자의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자취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일찍 결혼해서 귀여운 조카를 선사한 누나 덕분에 어머니는 귀여운 조카 놈의 양육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누나네와 같이 살게 되었고 나는 엄연히 우리 집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어머니께서 집에 오셨지만 어머니는 워낙 요리 솜씨가 없는 걸로 정평이 나있어서 혼자서 챙겨 먹어야 했다. 굳이 어머니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뭘 만들어먹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간혹 소개팅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여성이 밥통에 밥을 못한다거나 라면도 끓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미모 여하를 막론하고 호감이 가지 않았다.


31살. 혼자 살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해 먹었다. 최근 들어 셰프들이 방송 전면에 나오고 요리 예능들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나 스스로 요리를 제대로 흔히 말하는 플레이팅까지 하면서 만들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나는 내가 만든 요리를 나 혼자서 만들고 나 혼자서 먹어도 맛있었고 그것 자체로만 만족했다. 참고로 내 취미는 마트 가기다.


오늘은 사실 별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탓에 집 근처 마트에 들렸다. 어제부터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뭐 운동은 평소에도 꾸준히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아침형 인간인척 착각하며 피곤한 몸 이끌고 띄엄띄엄했었다. 여기서 말하는 띄엄띄엄은 헬스클럽을 끊어 놓고서 한 달에 3번 정도 가는 그 정도를 말한다. 나는 그 헬스클럽에 있어서 거의 기부천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랄까... 좌우지간 어제부터 시작한 운동. 운동도 다시 제대로 하면서 식단도 한번 제대로 갖춰보자고 생각했다. 식단 갖춰 운동하자는 다짐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매번 음주와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 끊인 없이 유혹하는 배달음식으로 인해서 번번이 실패했었다. ‘이번만은 꼭.. 제대로 먹으리라’


오늘 인터넷에서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이전에도 몇 번 먹었지만 50개를 시키면 10개 정도 먹을까 말까 하다가 냉동실의 자리만 차지하다가 결국에는 음식물 쓰레기 행이었다. 오늘도 닭가슴살을 구입을 위해서 검색했지만 이전보다는 더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형성하며 많이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닭가슴살 스테이크, 닭가슴살 소시지 등 그냥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되는 그런 간편한 제품들로 주문했다. 그런데 배송이 내일이다. 오늘부터 갖춰서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직접 만들어 먹자고 생각했다. 번거롭지만 말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들, 야채들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다
참으로 귀찮은 손질들
냉동 닭가슴살, 누구는 실온 해동을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그냥 전자렌지 행


인터넷에서의 레시피 검색 없이 머릿속에서 그린 이미지 대로만 구입했다. 냉동 닭가슴살과 야채의 보충을 위한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양상추, 그리고 오리엔탈 드레싱. 끝이다! 집에서 재료를 풀어놓고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하면 나중에 발생하게 될 설거지도 문제지만 이놈의 재료 손질이 문제다. 정말 다이어트의 길을 멀고도 험하달까.


오늘의 메뉴는 그저 그런 평범한 닭가슴살 샐러드. 재료들을 하나하나 손질해 나가면서 '아 이거 오늘 뭔가 느낌이 좋은데? 맛이 있던 없던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한번 올려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는데, 이때까지 이쁘게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꼭 이쁘게 만드리라고 다짐했다. 맛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손이 많이 가는 녀석, 양상추!
고기먹을때 주로 사용하는 각종 향식료들(홈플러스 사랑해요)
어느정도 해동된 닭가슴살에 향식료 투척

손질하고, 해동하고, 향식료 투척하는 과정에서 재료의 부족함을 느꼈다. 꼭 이런 거 만들 때 뭐 하나씩은 빠지기 마련인데, 그 흔한 올리브 오일이 없었다. 평소 파스타를 즐겨해 먹는데 파스타 먹을 때 그렇게 자주 사용해 놓고서는 오늘 왜 없는 거지 싶었지만 이 기름이나 저 기름이나 같다 싶어서 그냥 명절 때 사용하다 남은 카놀라유를 투척했다. 그나저나 저기 위에 보이는 비주얼은 참.. 맛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달가슴살
야채들은 내일도 먹기 위해 손질 후 용기에 보관
그 사이 더 맛있게 익어가는 닭(비주얼은 좀 별로다)
동영상인데도 비주얼은 별로다
좀 징그럽게 생겼다

모든 재료가 손질되고, 닭도 어느 정도 익은 것 같았다. 서두에서 언급 안 한 부분이 있는데 나는 마트 가는 것이 취미이자 모던하우스 가는 것도 취미이다. 때마침 모던 하우스에서 구입했던 좋게 말해 모던이지 그냥 심플한 검은색 그릇이 생각나서 그 녀석도 꺼내서 담아보았다. 원래 계획은 닭가슴살 샐러드였기 때문에 다 섞여있는 그런 모양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막상 이 그릇을 보니 그렇게 섞어서 담을 수도 없거니와 따로따로 담아야지 모양이 이뻐 보일 것만 같은 직감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요렇게도 찍어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찍어봤지만 밑에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옆에 바나나는 원래 잘라서 올리려고 했으나 그릇이 매우 비좁은 관계로 옆에 덜렁 갖다 놓았다. 에비앙은 그냥 허세용 아이템이다. 실제로 먹으려고 샀지만 이날 나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는 사이다를 먹었다. 모양은 어느 정도 만족했다. 사진도 찰칵찰칵 찍었다. 문제는 맛이다. 그전에도 닭가슴살에 그다지 맛있음을 느껴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냉동 닭가슴살인데 조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1시간 가까운 내 정성이 들어간 음식인데 제발 맛있어라 생각하면서 한입 야금! '아. 맛있다' 정말 이런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정말 맛있었다. 아 이래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직접 조리해서 먹는구나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 먹으니 흔해 빠진 닭가슴살도 오버와 과장 200개 보태서 동네 레스토랑에서 먹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요리는 대성공이다. 


아마 내일도 이렇게 번거로운 요리를 내가 할지는 의문이지만.. 아무래도 오늘 손질해 놓은 야채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하라면 금방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런 거 매일 먹으면 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며, 요리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서 나라는 사람도 요리하는 남자 그 대세에 발가락 하나 걸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정치 견해가 눈치 보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