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간적인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낸 문장은 '나는 노골적인 사람이 좋다'였다. 진보적인 선배와 보수 성향에 가까운 후배가 불현듯 떠오르면서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정치적으로 옳은 말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선배보다, 누가 봐도 혐오성 발언인데도 기회가 주어지면 망설임 없이 내뱉는 후배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다.
처음 든 생각은 '위선'이었다. 선배의 공적인 발언은 멋졌지만, 개인대 개인으로 만날 때의 선배는 쉽게 흥분하고 감정적이 되는 사람이었다. 후배는 공적인 발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주변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사적으로 만날 때면 선배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해 욕을 잘했고, 후배는 특정 주제나 대상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적어도 선배보다 후배가 덜 위선적으로 보였다.
위선적인 것이 인간 본성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좋은 사람 또는 착한 사람이고 싶을 테니까.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착한 사람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단순한 미덕 추구라기보다, 진화적으로 각인된 생존 전략에 가깝다. 집단 안에서 신뢰를 얻는 것, 배척당하지 않는 것, 협력의 대상이 되는 것 등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평판을 확보하려는 본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AI의 답이다. 이런 차원에서 후배는 예외적인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은 거 같아 끌린 거 같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후배는 정말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후배는 근본적인 생존 전략의 하나인 평판을 포기하면서까지 얻는 것은 무엇일까? AI와의 대화를 더 이어갔다. 후배의 성향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아 인간 본성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을 던졌다.
또 다른 인간 본성의 한 부분으로 진실성이라는 단어를 제시한 것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인간 본성과 먼가?'라는 물음은 곧 진실성 ↔ 생존 전략(사회적 평판) 사이의 긴장 관계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AI의 결론이다. 위선만을 인간 본성으로 상정했던 애초 생각에 균형을 잡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AI 역시 '인간의 본성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보다는, 두 가지 상반된 충동의 공존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답했다. 인간은 자기 내면을 표현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녔고, 이것은 자아 정체성과 정서적 해소 욕구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복잡한 인간 본성의 속성을 사회문화적으로 연결한 AI의 답에서는 고개가 끄덕였다.
"현대 사회는 한편으론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장려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수위를 통제합니다. 솔직한 사람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존재로 환영받기도 하고, 동시에 불쾌한 인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항상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진실성 자체가 미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후배에게 인간적으로 끌리는 이유는 인간 본성 거스르는 비범함 때문이 아니라 또 다른 인간 본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가르는 기준은 인간 본성과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미쳤다. 위선도 진실성도 아닌 다른 해석을 찾으려고 생각을 밀고 나갔다.
AI와의 대화에서 '진실성보다 평판에 더 민감한 사람일수록 정치적 올바름에 더 강하게 끌릴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을 끌어냈다. '진보 성향과 ‘도덕적 우월성 추구’가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AI의 설명이다. 유레카를 외쳤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과하고, 이 지점에서 선민의식을 떠올리게 됐다.
다른 견해를 틀린 견해로 규정하는 습성은 후배보다 선배가 강했다. 선배의 말들은 타인을 가르치려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고, 후배의 말들은 타인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자기 확신에 찬 선배는 자기비판에는 거리를 뒀고, 사회적 정의라는 잣대로 경계선을 치며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일을 즐겼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노골적인 사람이 좋다는 생각이 이르렀다. 선민의식이라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이 안 그런 척하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꼴사납다.
마지막으로 글에 삽입할 이미지 파일을 AI에게 부탁했다. 인간의 본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그림이되, 어둡지 않은 예술 작품 스타일이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아서 요청했다. 얼마 후 나온 그림이다. 바로 든 느낌은 식상하다, 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가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표정이 역설적이다. 보통 시꺼먼 속마음을 표현하는 표정이 가면 뒤에 나올 법 한대 반대다. 인간 본성이 이중적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만족스럽게 그림을 갖다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