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주도권

<올바른 고기> 11장.

by 돈태

며칠 동안 그는 거의 편집실에서 살았다. 수영이 요구한 입법 메시지를 포함한 새로운 구성을 머릿속에서 수십 번쯤 다시 짰다. 낮에는 촬영팀과 인터뷰 일정을 맞추고, 밤이 되면 혼자 남아 타임라인을 다시 손봤다. 지하철 막차를 놓친 날에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다가 다시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왔다.


노트북 화면 옆에는 메모지가 늘어 갔다. ‘입법 컷 위치’, ‘영국 사례, 한국 적용’, ‘일상 장면 자연럽게’. 그는 수영이 했던 말을 기준으로 나름의 포인트를 정리했다. 입법 관련 내용이 추가되면서 전체적인 영상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데 주력했다. 축산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전반부, 조리 과정에서의 고통을 다룬 중반부, 그리고 마지막에 짧게 들어가는 입법 요구. 공장식 사육의 인간성 상실 그리고 생물 요리 과정에서의 폭력성이라는 결이 다른 주제를 하나의 틀로 담아내기 위해 힘썼다.


특히 남당리 대하 축제 장면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수영의 요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 영상이었다. 굵은소금들 깔려 있는 냄비, 불에 달궈진 냄비에 살아있는 대하들을 그대로 넣고 뚜껑을 닫는 식당 직원들. 유리 뚜껑 안에서 날뛰는 대하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식당 손님들의 모습. 각 장면이 길지 않으면서도 임팩트 있게 전달돼야 했다.


전체 영상의 서사에 엇나가지 않게 축제 장면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했다. 대화 축제 장면을 너무 앞에 두면 전체적인 주제와 서사가 흔들리고, 너무 뒤에 배치하면 수영이 원한 입법 메시지와 연결이 약한 거 같았다. 결국 중반부 전환 지점에 짧게 배치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 붉은색으로 변한 대화를 냄비에서 꺼내 껍질을 까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습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자막 한 줄이 화면을 채웠다.


'맛을 위해, 고통을 생략'


마지막 컷은 오히려 쉽게 풀렸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요구하는 문장을 썼다가, 곧 지웠다. 보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고르게 만들자! 그는 수영의 말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자막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할까요?'


사흘째 밤을 새운 뒤 초안이 완성했다. 그 다음날 오전, 그는 완성된 파일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수영과 팀원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커피 잔들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고, 스크린에는 재생 준비 화면이 떠 있었다. 그는 짧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영상을 틀었다.


6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그는 60분처럼 느껴졌다. 축산 현장의 장면들이 지나가고, 남당리 대하 축제의 컷이 짧게 이어졌다. 그 위에 얹힌 자막, 영국 입법 사례 그리고 마지막 질문 문장까지. 영상이 끝나고 회의실 안은 잠시 잠잠했다.


“마지막이 마음에 드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수영이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문장 대신 질문으로 끝낸 선택이 좋아. 넛지 느낌이야.”


그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밤새 고민했던 부분이 제대로 전달됐다고 느꼈다.


몇 가지 자막 표현과 음향 볼륨에 대한 소소한 의견이 오간 뒤, 회의는 빠르게 마무리됐다.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이대로 가죠. 약간의 수정만 오늘 안에 정리합시다.”


회의는 예상보다 짧게 끝났다. 그는 초안이 ‘작품’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마음 한쪽에는 찝찝한 감정이 살짝 올라왔다. 입법 메시지가 얹힌 구간이 자꾸만 걸렸다. 그는 스크린에 떠 있던 몇 개의 자막을 떠올렸다. ‘금지’, ‘법’, ‘제도’. 단어들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이 영상이 공개된 뒤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까? 어디까지가 자신의 의도이고 어디서부터가 수영의 의도가 되는가? 생각이 꼬리를 물자 그는 눈을 찔끔 감고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는 회의실을 나와 복도 끝 창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분명했지만, 그 성취감이 왠지 반쪽자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영이 마음에 들어 하던 마지막 질문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문장은, 어쩌면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날 오후, 수영은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약속된 의원실 방문증을 끊고 경비 검색대를 통과해 의원실로 향했다. 이름표가 촘촘히 붙은 의원실 문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수영은 한 의원실 앞에 멈춰 선 후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돈태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기자 관두고 책방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5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현실을 바꾸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