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꾸기 위해

<올바른 고기> 10장.

by 돈태

캠페인 성과 보고 메일이 전사 공지로 돌았던 날 오후, 수영은 팀 회의를 소집했다. 조회수와 후원 지표, 언론 노출 캡처들이 화면에 차례로 떴고, 몇 군데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수영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이번 건 잘 마무리됐습니다. 다들 고생했고요. 오늘은 일찍 접고, 간단히 식사하면서 정리합시다.” 그 말에 사람들 얼굴이 조금 풀렸다.


회의가 끝나고 편집실에는 퇴근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다만 그는 아직 정리할 것들이 남아 있어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서버에 최종본을 백업하고, 다음 주 일정표를 업데이트하고, 인터뷰 요청 메일을 분류했다. 어느새 수영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늘은 좀 쉬자."

회식 자리는 회사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작은 비건 식당이었다.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늘 오던 곳이라며, 팀장은 예약 이름을 말하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접시들이 반쯤 차 있었다. 콩으로 만든 튀김, 버섯 스테이크, 채소로 채운 타코. 누구도 고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팀의 암묵적인 규칙처럼.


“이번 캠페인 정말 깔끔했어요.” 수영이 먼저 잔을 들었다. “언론도, 후원도, 내부 반응도 다 좋았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그의 이름도 불렸고 축하의 말이 오갔다. 술잔도 빠르게 돌았다. 그는 오랜만에 마음 편히 술잔을 비우며 마음이 들떴다.


점점 팀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있었다. 그때 한 팀원이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여기는... 몇 단계 정도 가능할까?"

“락토, 오보, 페스코… 요즘은 플렉시테리언도 있으니. ” 다른 팀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순간 수영이 말을 받았다. “그런 분류가 저는 별로예요. 결국 타협의 말들이잖아.”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수영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동물을 권리의 주체로 본다면, 단계는 없습니다. 먹지 않느냐, 그뿐이죠.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편의의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사람마다 시작이 다르잖아요.”


수영이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말했다. 말투는 침착했지만 단호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일반인들과 다르잖아. 우리부터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 단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여지를 두는 것일 수 있지."

그는 술기운 때문인지 입이 근질근질했다. 수영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수영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영의 진지한 얼굴에서 나오는 말들이 정답이라고 강요를 하고 있는 듯해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는… 줄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덜 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전체 고통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니까요.”


수영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그건 계산의 언어지. 고통을 줄이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는 계산으로 남겨두면 안 돼. 누군가를 ‘덜 침해’하는 걸로는, 그가 침해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는 대꾸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말을 고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잔을 한 번 비웠다. 그리곤 살짝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사람들이 한 번에 다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운동이 필요한 거지.” 수영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현실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쪽으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영이 든 술잔에 자기의 잔을 부딪혔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누군가는 다음 캠페인 이야기를 꺼냈고, 누군가는 후원 행사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대화들에 끼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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