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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태 Apr 01. 2022

'비장애인'이라서 다행이다

아직 '운' 좋아서 유리한 글쓰기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려면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 최소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비장애인은 운이 좋지 않을 경우 10~15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탄다. 버스 뒷문에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도록 지지대가 내려오는 저상버스의 보급률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국토교통부는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발표하며 2021년까지 저상버스 보급률을 42%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전국 기준으로 보급률은 27.8%에 그쳤다.  


버스가 오래 걸리면 지하철을 타면 된다. 다만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서울 지하철(1~8호선)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사의 비율은 지난해 기준 93%다. 다르게 말하면 서울시 내 지하철역 22개에 아직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에서는 와이어 줄에 의존해 층과 층을 오가는 리프트를 타야 한다.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 2004년 서울역, 2006년 회기역, 2008년 화서역, 2012년 오산역, 2017년 신길역에서 리프트에 탑승한 장애인이 추락해 죽거나 다쳤다.  

              

버스도 지하철도 아니라면 장애인콜택시(장콜)가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장콜은 총 3914대다. 법에서 정한 ‘중증장애인 150명당 1대’라는 기준보다 800대 정도가 부족하다. 장콜의 불편은 지역 간 이동 시 더욱 커진다. 소속 지자체의 관할 지역을 벗어나는 장콜은 배차 방식도 다르고 차량 제한도 있어 지역 내에서 장콜을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지역 간 편차도 크다. 장콜은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하도록 개조된 특장차이기 때문에 법에서 '특별교통수단'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국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사업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별 재정 여력 등에 따라 환승, 접수, 배차 등의 서비스 체계가 제각각이다.      


정치권도 이런 장애인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 국회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석 의원 228명 중 227명 법안 통과에 찬성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장애인들의 불편이 현실적으로 해소될지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법안 심사 과정에서 디테일에 악마가 따라 붙었다.   

  

개정안에는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새롭게 신설됐지만,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이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만 해당할 뿐,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다. 더욱이 도로의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을 시에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조항까지 달렸다. 

또한 지역 간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국가 또는 도(道)가 장콜)의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됐지만, ‘(지원을) 해야 한다’였던 원안이 법안 심사를 거치며 ‘(지원을)할 수 있다’로 수정됐다. 법에 따라 지원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장애인 단체는 이동의 불편을 해소해 달라고 21년째 투쟁하고 있는데, 이제 곧 여당이 될 정당의 대표가 최근 ‘시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논쟁 자체를 뭐라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갖는데 일조했다. 다만 내용이 아닌 형식을 걸고넘어지는 모습에 '밴댕이소갈딱지'가 떠오른다. 

         

나는 오늘도 두 다리로 지하철을 타고 예상한 시각에 책방에 도착해 글을 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아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최대한 오래 써야 하는 입장에서 휠체어가 필요 없어 유리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예술하기 힘든 환경과 여건을 지적했듯이 말이다.

           

"만일 한 여자가 글을 쓴다면, 그녀는 가족 누구나가 사용하는 공동의 거실에서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팅게일 양이 그렇듯 격렬하게 '여자들은 그들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을 반 시간도 가지지 못한다'고 불평하였듯이, 그녀는 글 쓰는 도중에 끊임없이 누군가의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자기만의 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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