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기자 5년 차인 영주는 네이버 신문보기를 통해 조간에 실린 기사들을 살펴보다가 중앙일보 기사 제목을 노려보는 중이다. '영원한 1등은 없었다'로 시작되는 제목이다. 또 1년이 지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매년 중앙일보가 기획성으로 내보내는 대학평가 기사를 접할 때면 들던 묘한 감정이 또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영주는 입을 삐죽 내밀며 기사를 클릭했다.
무시하고 싶은 씁쓸한 기사라고 생각하면서도, 끌렸다. 도대체 대학평가 기사를 언제까지 쓸 건지, 라며 혀를 차면서도 눈에는 힘이 들어 가는 거 같았다. 얼마나 잘 썼냐는 듯 애써 눈을 흘기며 기사를 읽으면서도 어느새 영주는 집중하고 있었다. 기사 중간에 삽입된 그래픽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이 급상승했다. 영주는 순간 핸드폰에서 눈을 떼 주변을 한번 살폈다. 다시 핸드폰 화면에 눈을 돌린 영주는 그래픽에 적혀있는 대학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안도감인지 못마땅함인지 그것도 아니면 헛웃음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콧바람이 입을 앙다문채 새어나왔다.
'7 이화여대.'
순위 칸에 '7'이 적혀 있는 곳 바로 옆에 영주의 모교 이름에 박혀있다. 영주는 모교 이름 바로 위와 아래에 자리한대학 이름을 천천히 응시했다.'경희대가 우리보다 위라고?' 영주는 20위까지 나온 그래픽을 다시 한번 훓었다. 묘한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영주는 '여대는 우리 밖에 없네. 이제 이런 기사 좀 그만 쓰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기사를 더이상 읽지 않았다.
출처: 중앙일보
"어이 이대 나온 여자."
영주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급하게 돌렸다. 건성으로 경례를 하듯 오른손을 이마쯤에 올린 진욱 선배가 다가오고 있다. 같은 회사지만 출입처가 달라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든데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진욱은 영주의 1년 선배다. 정확히는 진욱이 7개월 정도 먼저 입사했다. 진욱은 회사의 연말 수습공채 합격했고, 그다음 해 상반기 특별채용을 통해 영주가 입사했다. 영주는 '저 새끼 또 저렇게 부르네'라고 생각하며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영주가 수습기자 시절에는 공채MT가 활기를 뗬다. 현재는 퇴직한 공채 1기 선배가 대장 노릇하는 재미에 한창 빠져있던 거 같기도 하다. 영주는 을왕리로 첫 공채MT를 갔던 날, 만취했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조개구이로 얼큰히 취했던 영주는 숙소 안에서 판을 벌린 2차에서 나사가 풀렸다. 다들 목소리가 커지며 분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를 무렵 진욱이 '야자 타임'을 제안했다. 눈의 초점이 흔들렸던 영주는 앞뒤 맥락 없이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치며 자신의 빈 잔을 내밀며 진욱한테 술을 따르라고 명령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영주의 잔을 채웠던 진욱은 그 뒤로 영주를 민날 때면 첫 인사를 "이대 나온 여자"로 시작했다.
"선배, 이쪽에 점심이 있나 보네?"
"응. 홍보실에서 이쪽으로 오라고 해서. 너 출입처는 이 근방이지?"
"네. 뭐 맛있는 거 먹나 봐?"
"당연하지. 이렇게 이동시켜 넣고. 넌 뭐 먹냐."
"전 취재원 만나려고. 내가 사야 할 듯."
"누구 보는데 밥값까지 낸다냐. 뭐 하나 잡았나 보네."
"그런 건 아니고 회사에서 동덕여대 사태 팔로업하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그쪽 관계자 하나 섭외했지. 기사 쓸 만할지 모르겠네."
"건투를 빈다. 언제 술 한잔 해야지. 같이 안 마신 지 꽤 됐다."
"콜. 연락주셔."
진욱 선배한테는 '그쪽 관계자'로 했지만 사실은 고등학교 후배다. 지방에서 여고를 나온 영주는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을 했다. '카니발'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졸업 선배들을 초대해 행사를 열 정도로 방송반은 재학생과 졸업생 사이의 유대가 끈끈하다. 영주는 방송반 후배들 가운데 동덕여대에 다니고 있는 미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영주보다는 9살이 어린 미선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재작년 카니발에서 영주를 만난 미선은 자기도 꼭 기자가 되겠다며 행사 내내 영주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