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세상보다 죽음의 세상이 결코 어둡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유명인들의 사망 뉴스에 얼마만큼 놀라시나요? 이제는 이래도 되나 싶게 무덤덤해졌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 뉴스가 나오니까요. 가끔은 충격을 받지만 그때뿐이에요. 하루 정도면, 거뜬히 일상으로 돌아와요. 일본은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우리는 표현을 한다잖아요. 그런데 애도의 기간이 얼마 안 가더라고요. 표현을 하나, 안 하나 결국 일상으로 금세 돌아와요. 어쩌면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라도 죽는 건데, 죽음도 일상의 한 부분인데, 유난스러울 이유가 없는 거죠. 자연스럽고, 담담할수록 아름다운 걸지도 몰라요.
왜 갑자기 죽음 이야기냐고요? 오늘 인스타그램에서 영정 사진을 봤어요. 이전 사진은 온통 여행 사진이었어요. 여행의 주인공이, 갑자기 죽음의 주인공이 된 거예요. 이 기막힌 상황에, 저는 놀랄 수밖에요. 게다가 우린 이미 구면이에요. 태국 빠이에서 저는 밥을 얻어먹었어요. 그때는 제가 더 아픈 사람이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빠이를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커브길에서 미끄러졌거든요. 피 철철 흘리면서 백미러도 부러진 오토바이로 빠이 응급실을 스스로 찾아갔어요. 날파리들이 피 맛 좀 보려고 얼마나 달려들었는지 몰라요. 마침 빠이로 여행 온 그분이 SNS로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이 꼴로 나가야 하나?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 먼 곳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있다는 것도 큰 인연 아니겠어요? 여행자들은 늘 만나면 화기애애해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태국이고, 빠이잖아요. 동행한 다른 여자분과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했어요.
노르웨이에 산다고 꼭 놀러 오라셨죠. 불편할 수도 있으니, 밥만 식판에 담아서 방문 앞에 두겠다셔서 한참을 웃었네요. 덕분에 노르웨이를 자주 상상했어요. 언젠가는 그곳에 갈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그곳에 산다는 건, 아늑한 힘이 있어요. 일부러 적응하려 하지 않아도, 너끈히 스며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식판에 밥을 담아주는 상상도 자주 했어요. 사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누가 자라고 한다고 선뜻 자는 사람이 못돼요. 대부분이 저 같을 거예요. 그래서 식판 밥이 농담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죠. 오랜 시간 투병 중이었나 보더라고요. 투병 중에도 여행을 하고, 투병 중에도 가끔 내 사진에 좋아요도 눌러 주면서요. 그리고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됐어요.
짧은 인연이어도, 짧은 인연이 아니죠. 그때 제 꼴이 진짜 말이 아니었어요. 붕대로 칭칭 감은 걷는 미라 수준이었거든요. 저를 위로해 주고, 웃겨 주던 분이라서일까요? 늘 행복한 여행 사진만 올렸던 분이라서일까요? 이상해요. 믿기지가 않아요. 늘 행복하고, 건강하기만 한 분인 줄 알았거든요. 내 눈에 행복해 보인다고, 아무 문제없는 삶들이겠어요? 속으로 곪아도 요리 사진 올리고, 눈 뜨면 한숨뿐이지만 여행 사진으로 아닌 척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어찌 됐든 살아야 하니까요. 이제 고통 없는 세상 속에서 훨훨 날고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 사후의 세계도 얼마든지 좋은 세상이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죽음의 공포도 사실 무지이기를 바라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써야겠어요. 삶의 세상에 계신 여러분, 오늘도 잘 사셨어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은 살아지는 걸까요? 살아가는 걸까요? 비슷한 문장인데 참 느낌이 많이 다르죠? 살아지다 보면, 결국 또 사라지죠. 신비롭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해요. 살아지는 삶 말고, 살아가는 삶, 살아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