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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02. 2021

올해가 가기 전에 한국에 가려고요. 그리운 한국의 겨울

한국의 추위가 그리워지는 날도 오긴 오는군요

2014년 삼척 

11월쯤엔 한국으로 들어가려고요. 눌러산다는 건 아니고요. 코카서스 여행기도 나올 테니까, 책 홍보도 겸해서 한국행 비행기를 끊으려고요. 코로나 때문에 거의 2년을 내리 태국에서 머물렀어요. 이런 적은 저도 처음이에요. 1년에 한 번 이상은 꼭 한국을 갔었는데요. 11월에 한국으로 들어간다면, 뭘 하고 싶나 생각해 봤어요. 


1.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추울 때 갈 만한 곳이 한국에선 제주도 정도인가요? 제주도도 바람이 너무 심해서요. 인도네시아 발리도 한 번 생각해 보려고요. 한 달 살기보다는 좀 짧게 다녀오는 게 낫지 싶어요. 아버지는 한식파라서, 외국에 오래 머물수록 지치시더라고요. 형이 있는 아르헨티나로 갈 수도 있어요. 가족이 모두 살아 있을 때,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 외국 나가면 아버지랑 또 부딪히겠지만, 저도, 아버지도 늙어간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장거리 비행기도 끄떡없이 타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 책이 대박나서, 최소 비즈니스석으로 모시고 싶어요. 솔직히 아르헨티나는 저도 이코노미석 무서워요. 장거리 비행은 중노동이에요. 저도 예전 같지 않아서, 비행기면 다 좋다. 그런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나갔답니다. 


2. 눈이 오는 한라산을 등반하고 싶어요 


한라산을 오른 적이 없어요. 딱히 관심도 없었고요. 페이스북으로 한라산 설경 사진을 보다 보니까, 눈이 돌아가더라고요. 한국의 겨울은 환상이에요. 침엽수에 눈이 얹어져서 산을 꽉 채운 풍경은 압도적이죠. 고즈넉하게 숨어 있는 절들은 또 얼마나 깨끗한가요? 눈의 세상을 많이 즐겨보고 싶어요. 우리의 겨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른 나라를 떠도니까 확실하게 알겠더라고요. 울릉도도 저에겐 제주도 못지않게 아름다운 섬이에요. 울릉도 가보신 분들, 놀라지 않으셨나요? 저는 매일매일 놀랐어요. 그렇게까지 아름다운 줄 몰랐거든요.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면서, 짬뽕을 먹고 싶네요.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아늑한 식당에서 뜨거운 국물에 감동하고 싶어요. 


3. 통영에서, 거제에서, 군산에서 며칠 씩 머무르고 싶어요 


이왕이면 좀 좋은 숙소에서, 낯선 세상과 마주하고 싶어요. 언제나 떠돌면서, 한국에서조차 떠돌고 싶어 하는 저를 신기해하고 싶어요. 낯선 도시의 밥집과 카페를 전전하고 싶어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그러니 기억 속의 통영도, 거제도, 군산도 많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재래시장은 말끔해져 있을 테고, 전망 끝내주는 초대형 카페들이 비싼 커피를 팔고 있겠죠. 외떨어진 시골에서 파스타를 팔고, 드립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한국에선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죠. 내가 살던 한국이 맞나? 조금은 서운하고, 조금은 신기한 마음으로 어딘가의 단기 체류자가 되고 싶어요. 버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투리 대화를 엿듣는 것도 저에겐 큰 재미네요. 


4. 포장마차에서 소주 반 병에 곰장어를 먹고 싶어요 


바람 숭숭 들어오는 포장마차에서 옛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고 싶어요. 미원 듬뿍 어묵 국물에, 식감이 끝내주는 곰장어를 먹고 싶어요. 싸구려 여관에 들어가서, 치토스와 진로소주로 2차를 하고 싶어요. 우리나 재밌는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싶어요. 언제 이렇게 늙었지? 그런 자각은, 술이 깨기 전까지는 오지 않을 거예요. 가장 창피했던 순간, 가장 후회되는 순간, 가장 지랄 맞았던 순간들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렇게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는 결코 공짜로 늙지 않았다. 이왕이면 기구한 이야기로 청승 떨고 싶어요. 그래도 죽지 않은 게 어디야? 이미 세상에 없는 친구들을 가슴으로 쓸어내리며, 산 자의 미안함과 특권을 그렇게 느껴보고 싶어요. 


5. 내가 다녔던 대학교를 거닐고 싶어요 


너무 세련되고, 깨끗하고, 복잡해진 학교 교정이 낯설겠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흔적을 반가워하며 구석구석 걷고 싶어요. 객관적으로는 맛없고, 주관적으로는 최고로 맛있었던 학교 식당에서 식판에다 밥을 받아먹고 싶어요. 다른 게 다 변해도, 스테인리스 컵이야 그대로겠죠? 학교 앞 단골 식당은 모두 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라도 남아 있는 옛날 식당이 있다면, 사진이라도 찍어 두려고요. 이건 기적이라며 주접도 좀 떨어 보고요. 늦겨울에 주제 파악도 못하고 피던 미친 목련은 그대로인지 보고 싶어요. 그런데 꽃도 잎도 없는 나무가 목련나무인지 어떻게 알아보죠?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걸까요? 


6. 젊은 작가들과 밤새 수다 떨고 싶어요  


그래봤자 한두 번 얼굴 본 게 전부지만, 여행 좋아하고, 글 좋아한다는 이유로 친해졌던 작가들과 술판을 벌이고 싶어요. 감당도 못하는 술을 퍼마시고 오바이트도 좀 하고 싶고요. 아침이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고 싶어요. 내가 했던 닭살 돋는 말은 잊어 달라며, 모두에게 카톡을 돌리고 싶어요. 너희들이 옳다. 무조건 옳다. 나보다 젊으니까, 무작정 응원해 주고 싶어요. 나처럼 살면, 나 같은 시각만 갖게 되는 거죠. 그러니 내 삶은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어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이 백 점 만점 삶인 거죠. 내가 더 늙었다는 이유로 귀담아들으려는 친구들을 혼내주고 싶어요. 그래 봤자 스무 살 차이면 같이 늙어가는 거 아니냐? 저는 저대로 우기고 싶어요. 평생 남을 추억을 남기고 싶어요. 


7. 혼자 영화관에서 펑펑 울고 싶어요 


한국어로 된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이 참 오래됐네요. 그러니 이왕이면 한국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눈물 펑펑 흘릴 수 있는 신파극이면 더 좋고요. 영화관은 혼자 가야 제맛이죠. 자막은 볼 필요도 없는 반가운 한국 영화에 몰입하고 싶어요. 영화가 끝나면 뜨거운 목욕탕에서 몸을 지지고 싶어요. 목욕탕이 이렇게나 소중하고, 흔치 않은 시설이라는 걸 한국에 살 때는 몰랐어요. 알뜨랑 비누 냄새와 미스 쾌남 스킨 냄새에 감격하고 싶어요. 물론 쓰지는 않겠습니다. 냄새만 맡을게요. 출출한 배는 붕어빵과 어묵으로 채우고, 쌀쌀한 겨울바람을 상큼상큼 흡입하고 싶어요. 찐만두 연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곳으로 달려가서, 고기만두, 김치만두 반반 섞어서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어릴 때는 여름이 좋더니, 이제는 봄여름가울겨울이 각각의 이유로 다 소중해요. 사계절이 없으면 봄이 무슨 의미고, 여름이 무슨 의미겠어요? 모든 존재엔 이유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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