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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Jul 04. 2021

20년간 여행자로 살면, 저처럼 됩니다

인간은 미약하여, 환경에 무조건, 무지막지하게 지배받습니다

누군들 예상대로 살고 있을까요? 이십 년 가까이 한국보다,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됐어요. 작정하고 이민 온 것도 아니면서요. 머물고 싶은 만큼만 있자. 선을 긋지 않았더니, 20년을 떠돌이로 살고 있어요. 20년간 방랑자로 살다 보니 이런 변화들이 찾아 오더군요. 


1. 2년간 때를 밀지 않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때를 꼭 밀어야 하나?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 건 중국 리장의 소수민족과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였어요. 1년에 한 번 목욕을 할까 말까예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를 온몸에 발라요. 그 버터를 긁어내면 그게 목욕이에요. 워낙 건조해서 자주 샤워하면 피부가 견디지를 못한대요. 악취가 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목욕 안 한다고, 썩는 냄새가 나는 건 아니구나. 목욕 안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깟 때 좀 안 밀었다고 큰일이 나겠어요? 때 미는데 진심인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나요? 저도 근 2년 때 안 밀고 잘만 살고 있어요. 신기한 게 한국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때가 나오더라고요. 세신사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국수 가락이 쑥쑥 뽑아져 나와요. 창피하긴 한데, 신기하기도 해요.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다니까요. 저는 한국에 있을 때만 때를 밀어요. 때가 나와요. 


2.  낯선 향에 쉽게 적응합니다 


구역질 나는 향 때문에 숟가락 놓던 저는 이제 없습니다. 낯선 향기가 나도, 믿음으로 가득 차서 대담하게 먹습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손으로 음식 먹으면, 밥맛이 뚝 떨어진다고요? 저도 그랬죠. 머물다 보면, 비슷하게 행동하게 돼요. 결국 다 비슷한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들 테니까요. 일부러 해로운 음식 먹는 사람 있을까요? 생존을 위한 지혜가 지금의 음식일 텐데, 그 지혜를 제가 뭐라고 무시하나요? 그렇게 먹어도 큰 탈 안 난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된 음식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믿음이 일단 생기면요. 낯선 향이 오히려 반가워요. 적응 못하는 향은 없다. 시간이 문제일 뿐.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니까, 어차피 좋아질 텐데, 뭐. 이러면서 덥석 달려들어요. 그렇다고 개구리나, 토끼 대가리 같은 것까지 극복한 건 아니고요. 낯선 향에 한정, 일단 자유로워졌습니다. 


3. 비종교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교회 한 번 안 간 사람 있을까요? 대학 다닐 때는 성당 주일학교 교사도 했어요.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죄인으로 꽤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비종교인이 됐다는 게, 종교 자체에 냉소적인 사람이 됐다는 건 아니에요. 각 나라의 멀쩡하고, 호감 가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자기 종교에 헌신하더라고요.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심오하니까요. 감히 내가 그런 종교를 평가할 능력이 되나? 그러다 보니, 모든 종교를 존경하게 됐어요. 어떤 종교가 확실하게 우위에 있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저에겐 불교가 철학적으로 매우 호감이지만, 그렇다고 불교인은 아니에요. 종교를 가지고, 확신에 차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광신도나, 독선적인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만 아니라면요. 


4. 꿈에서 다른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한정된다는 사실은 부끄럽지만요. 꿈속에서 한국말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꿈속에서 말이 휙휙 바뀌는 사람이 됐어요. 이젠 한국말만이 유일한 언어는 아니에요. 한참 사교적일 때, 더 열심히 외국어에 매달릴 걸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남미에서 스페인어를 팠던 그 열정이면, 웬만한 외국어는 6개월이면 기본 회화 정도는 마스터할 수 있거든요. 에휴, 태국에서 12년 가까이 살면 뭐하나요? 매일 방에 처박혀서 글이나 쓰니, 까막눈이네요. 까막눈.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내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 얼굴만으로는 국적을 못 맞추더라고요. 태국에서는 일본 사람 같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고요. 중국에서는 산둥성 사람이냐는 말 몇 번 들었네요. 이렇게 저는 점점 무국적 사람이 되어 갑니다. 


5. 각각의 인종이 모두 아름다워 보여요 


어릴 때는 백인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어요. 지금도 금발의 푸른 눈을 보면, 신비롭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흑인의 까만 눈동자나, 동양인의 까만 머리와 작은 이목 구비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외모도 익숙해지면, 그 안에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솔직히 잘 구분 안 가죠. 다 비슷해 보이니까요. 더 예쁘고, 잘 생겼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끔 궁금해요. 우리는 팔다리 길고, 머리 작은 사람을 최고로 쳐주지만 서양에선 각진 턱, 도드라진 광대뼈, 두툼한 입술과 빵빵한 엉덩이를 선호하죠. 각 나라마다 미의 기준도 제각각인 거 보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닌가 봐요. 다시 태어난다면 잘 생긴 흑인이 되고 싶어요. 탄력 있고, 강인한 모습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6. 운동화나 구두는 답답해서 못 신겠어요 


쪼리라고 하나요? 플립플롭이라고 하나요? 비치 샌들이라고도 하는 발가락만 걸치는 신발 있잖아요. 5천 원 주고 마트에서 사면, 몇 년을 신어요. 처음엔 멋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서양 친국들이 날씬한 종아리에, 비치샌들을 걸치면 뭔가 섹시하더라고요. 처음엔 발가락에서 피까지 났어요. 적응하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이젠 비치샌들만 신어요. 운동화요? 구두요? 못 신어요. 답답해서요. 한국에 가면, 어려운 자리가 많으니 신을 수밖에 없지만요. 호텔 루프탑 같은 곳에선 가끔 쫓겨나기도 해요. 남자의 경우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 금지하는 곳이 꽤 되거든요. 이제는 저에겐 피부처럼 익숙한 신발이지만, 그래도 신을 때마다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저에게 비치샌들은 여행자의 유니폼 같은 거예요. 


7. 남들보다 배탈에 강한 사람이 됐어요 


같은 걸 먹어도 탈이 잘 안 나요. 전 세계 세균을 골고루 섭취해서 그런가 봐요. 진정한 글로벌 위장은 인도에서 살아남아야 해요. 인도 어디에나 사탕수수 주스를 파는데, 유리컵에 담아 줘요. 그걸 물로 대충 한 번 헹구고 다음 손님이 마셔요. 인도인들조차 입 안 대고 마시더라고요. 그걸 아무 생각 없이 입대고 마셨어요. 사탕수수 주스만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라, 레몬주스, 망고 주스도 인도인 타액이 기본 장착된 컵으로 마셔야 해요. 파리도 윙윙, 손톱 때가 새까만 손으로 따라 주는 주스를 마시고 설사를 하는가? 안 하는가? 저는 설사 없이, 가뿐하게 살아남았어요. 길에서 옷에 똥 지려도, 하나도 안 이상한 나라가 인도입니다. 인도에서 생존한 장 건강, 이거 자랑입니다. 큰 자랑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에게 물을 때마다 신기해요. 어떻게 나는 나일 수가 있을까요? 외계인일지도 몰라. 그런 의심은 저만 하나요? 전 외계인이 맞을 거예요. 여러분은 외계인이 쓰는 글을 보고 계십니다. 저도요, 저도요. 이참에 묻어가시려는 분들, 그 동질감 사양합니다. 지구 유일의 외계인이고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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