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류의 로맨틱 드라마 좋아해요. 친구들끼리 한 집에 모여 살면서 연애하고, 티격태격하는 거요. 1,2회를 봤는데 대사가 찰지더라고요. 연기도 좋아요. 천우희는 앞으로 더 크게 되겠어요. 영화 <한공주>에서 처음 봤는데요. 이런 귀여운 역도 잘 소화하네요. 드라마 PD인 안재홍과 드라마 작가 천우희가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멜로가 체질'의 방향성을 드러내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드라마의 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죠. 오오. 기개가 넘치는구려. 제가 열심히 봐드리죠. 응원해 드리죠. 7회까지 보고, 포기합니다. 왜냐면요.
1. 우연의 남발, 참을 수 없는 억지 설정들
드라마는 신선하고, 깔끔해요. 캐릭터들은 악역도 없고, 음모도 없어요. 그 정도면 할 거 다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천우희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드라마 대본을 공모전에 내고요. 떨어지죠. 그게 우연히 안재홍의 손에 들어가요. 둘은 같이 드라마를 만들기로 하죠.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사이죠. 대작가의 보조 작가로 인사를 하고, 눈빛도 서로 발사한 상태죠. 어허. 그런데 조감독은 예전에 헤어졌던 전 남자 친구로군요. 이렇게 삼각관계를 만들어요. 티격태격. 거기서 끝이 아니라요. 안재홍의 옛 여자 친구는 유명한 노래의 작사가고요. 그래서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슬퍼지죠. 설정상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나 '벚꽃 엔딩' 같은 노래인 것 같아요. 실제로는 사용된 노래는 드라마 OST인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입니다. 노래는 좋아요. 천우희가 일부러 그 노래를 불러서 안재홍을 괴롭혀요. 귀여운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막 재미나진 않았습니다.
다큐 PD인 전여빈은 새로운 다큐를 만들어요. 고등학교 때 앙숙이었던 반 친구가 성공한 배우죠. 종편 방송에 함께 출연했다가요. 둘은 심하게 다툽니다. 어찌어찌해서 다큐를 제의해요. 앙숙인 친구에게요. 배우의 가공되지 않은 삶을 다큐로 만들어요. 전여빈은 이전에 떼돈을 벌었어요. 죽은 남자 친구의 도움으로 친일파 다큐를 만들어 대박을 쳤거든요. 본인이 친일파 가족이라서 누구보다 친일파를 잘 아는 남자 친구가 펄 걷어붙이고 도와주죠. 가족들에게 두들겨 맞아가면서요. 그 남자 친구는 갑자기 시한부가 되고, 죽죠.
삼총사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한지은은 자기에게 매달리는 남자와 초스피드로 결혼해요. 이혼하죠. 남자는 이 여자를 얼마나 좋아했냐면요. 여자의 말 한마디에 코미디언이 돼요. 한지은이 웃긴 남자가 좋다고 했거든요. 무명 코미디 배우로 대학로에서 활동하다가요. 성공한 코미디언이 되죠. 헤어질 때는 네 행복은 네 거, 내 행복은 내 거. 이러면서 줄행랑을 칩니다.
삼총사는 같이 살아요. 다큐 PD 전여빈이 죽은 남자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살아요. 우정이죠. 한지은은 아이까지 데려오죠. 전여빈의 게이 남동생까지 총 다섯 명이 동거를 해요. 아아, 거기다가 전여빈은 갑자기 전재산을 기부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인물들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그럴 법도 하지만, 결코 주변에 없는 캐릭터들 뿐이죠? 언뜻 신선하지만, 과장된 설정. 젊은각 안에 늙은 안일함이 가득해요. 이 정도면 매력적이야. 이 정도면 뭔가 있어 보이는 캐릭터지. 제작진끼리만 대견해하며 과감하게 드라마화 했어요. 절절한 현장감이 안 느껴져요. 영혼이 안 담긴 신선함이로군요.
2. 갑분싸, 전여빈과 전여빈의 죽은 남친
죽은 남자 친구가 계속 등장해요. 유령이라고 해두죠. 전여빈만 보여요. 사람들이 볼 때 전여빈은 정신 나간 사람이 돼요. 혼잣말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니까요. 죽은 남자 친구와의 애틋함을 강조하려고 했나 봐요. 애틋함을 매번 보여주는 게 과연 애틋할까? 강렬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었거든요. 남자 캐릭터가 힘이 없는 상태로 쭈욱 등장하니까요. 분위기가 계속 쳐질 수밖에 없죠. 전여빈은 쿨하고 진정성 있는 다큐 PD인데요. 자꾸 바람직하기만 해서, 보다가 제가 얼어 버려요. 짜샤, 나 멋있지? 얼른 나 멋있다고 해. 이런 느낌 낭낭합니다. 보는 시청자를 부담스럽게 해요. 전재산을 기부하는 것도요. 맥락 없이 그냥 돈을 다 기부해요. 기부금 광고를 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죽은 남친, 삶의 허무, 삶을 포기했으니 그깟 돈, 돈 기부. 이런 설정인데요. 여기에 겉멋이 추가됐어요. 그래서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3. 문제 해결 방식의 안일함
한지은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상품 홍보를 대행해 주는 일을 해요. 비비큐 치킨을 배우가 먹기로 했으면, 치킨을 준비하고, 그 치킨이 잘 노출되도록 현장에서 감시(?)하는 일을 해요. 배우나 감독은 애초의 약속을 개무시하죠. 한지은은 발을 동동 굴러요. 착한 한지은은 소심하게 조르고, 얼르면서 상품이 노출되도록 하죠. 그때 감독이 그래요. 일이 되려면 '오빠'라고 불러 보라고요. 오빠라고 부르면 일은 잘 풀리게 되어 있다면서요. 한지은은 모욕감을 느끼고요. 오히려 대놓고 오빠를 앵무새처럼 반복합니다. 오빠, 오빠, 오빠로 현장 스태프들을 질리게 해요. 촬영감독도, 배우도 한지은만 보면 도망가죠. 또 오빠라고 하겠구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성을 함부로 강요하는 걸 풍자한 에피소드인데요. 결국 오빠, 오빠 노래를 불러서 다시는 오빠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해 주마. 이렇게 에피소드를 마무리해요. 저는 감동받지 못했어요. 특히 한지은이 오빠, 오빠를 열심히 남발하며 애를 쓸 때, 좀 슬프더라고요. 연기로 부족한 개연성을 메꿔보려는 혼신의 연기 같은?
4. 기복 없는 인물들
인물들이 하나 같이 착해요. 누굴 미워하지도 않고, 샘도 내지 않죠. 기구함이 없어요. 그게 나쁜 게 아니죠. 어쩌면 요즘 친구들이 그럴 것도 같아요. 끝을 볼 만큼 밉거나, 샘이 나지 않는 거죠.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죠. 착한 건 좋은데, 그래도 사람 다 똑같지 않나요? 어차피 드라마니까 판타지로 봐야 하는 건가요? 멜로가 체질에서 저는 판타지만 기대한 건 아니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쩔쩔매는 엄마 한지은. 아들이 가끔 선을 넘어도 한지은은 아들을 통제할 방법이 하나도 없어요. 모성으로서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악역도 해야 하잖아요. 사랑을 놓쳤듯이, 직장에서 큰 소리 한 번 안 냈듯이, 그렇게 아이 앞에서도 꼼짝 못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야만 하는 한지은은 없죠. 대체로 인물들은 정의롭고, 바람직하고, 쿨하고, 안 질척대요. 쿨한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쿨한 사람만 있어요. 이게 확 질리더라고요. 그 어떤 판타지 드라마보다 판타지를 무차별로 투하한 드라마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재치 넘치는 대사들이 더 이상 와 닿지가 않네요. 인생 드라마를 기대했어요. 더는 못 보겠어요. 즐겁게 보시는 분들께 찬물 끼얹어서 죄송합니다. 드라마를 만든다는 거 영혼을 갈아 넣는 작업이죠. 제 글이 제작진에겐 힘 빠지는 글이 되겠죠. 이번 작품만 만들고 말 거 아니잖아요. 분명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사심 없이 즐겁게 보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는 이걸 오체투지라고 해요. 자신을 낮추고, 고행을 자처하는 티베트 불교인들을 보면서 울컥한 적이 있어서요. 글로 천천히 깨달음의 근처까지는 가보고 싶어요.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없다면 추천해 주실래요? 그렇게 더 많은 독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방콕 여행을 준비 중이시라면 이 책부터 사셔야 해요. 방콕이 두 배는 더 즐거워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