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동 공항의 저주 - 너는 포위됐다

by 박민우
image01.png 무료 새치기 권, 빨간 딱지

왕복 75만 원짜리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는 당연히(?) 직항이 아니다. 갈 때는 상하이를, 올 때는 칭다오를 거친다. 상하이 공항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신나게 허비하는 게 내 경우엔 시간인데, 공항 두 시간은 왠지 알차게 쓰고 싶다. ‘상하이 공항 맛집’을 검색한다. 국물을 쪽 빨아먹는 딤섬 사오롱바오가 먹을 만 하구나! 시간은 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내게 주어진 시공간을 명심한다. 여행 따위가 뭐라고, 나는 이토록 멋있어진다. 상하이에 착륙하자마자 한 여자가 사람들을 양쪽으로 밀어내며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서둘러서 얻는 게 뭘까? 빠져나가기에 딱 좋은 작은 몸집이다. 공항 건물로 들어가는 셔틀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중국이니까, 상하이니까 활주로 주변에 비행기도 많다. 인구도, 거대함도 다 볼거리다. 모두가 짜증을 낼 때, 나는 반짝인다. 늙은 문어인 줄 알았는데, 나의 빨판은 싱싱하게 호기심을 빨아들인다. 자리를 양보했는데도 끝까지 괜찮다고 하더니…. 서 있는 노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괜찮다고 할 것이다. 세 번까지 사양하고, 네 번째는 앉을 것이다. 나는 세 번을 권했다. 네 번을 권했어야 했나? 꽉 찬 셔틀버스, 노인의 무릎이, 내 무릎을 누른다. 그냥 앉으시죠. 다시 일어설까? 공항 셔틀버스가 가면 얼마나 가겠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미안하고, 그는 피곤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존재는, 미안해진다.


공항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다들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 앞으로 간다. 나도 한 기계 앞에 선다. 뭘 원하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본다. 손가락을 꾹 눌러 지문 자국을 내고, 여권을 문지르고, 종이 쪼가리를 받는다. 종이 쪼가리를 들고 휩쓸려서 간다. 줄을 선다.


“미국 비자 있어요?”


출입국 직원은 비자를 요구했다. 미국에 가기 위해서 전자비자(esta)를 받았다. 아이폰에 저장한 전자비자를 찾는다. 보통은 종이로 프린트해둔다. 나는 건방져서, 아이폰에만 저장해둔다. 사실은 그 ‘저장’도 깜빡했다. 인천공항 리무진에서 생각났다.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컴퓨터를 켜시고요. 바탕화면에 비자라고 쓰여 있는 걸 클릭하세요. 마우스를 두 번, 두 번 누르면 열려요. 글자가 작아요? 그냥 다 눌러봐요. 찾았죠? 있죠? 그걸 폰카로 찍으세요. 늙은 어머니를 윈도 화면 앞에서 벌벌 떨게 했다. 어머니는 그걸 어떻게 해내셨을까? 공공 도서관 컴퓨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아이폰에 저장해 둔 걸 또 한참 만에 찾아낸다. 미국 비자는 한국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세 번을 확인한다. 나의 존재는 항상 의심받는다. 아무리 여행해도 노련해지지 않는다.


“서둘러요. 보딩 시간이에요.”


전자 비자를 확인한 출입국 직원은 내 가슴팍에 빨간딱지를 붙인다. 이게 뭐지? 시간을 확인한다. 삼십 분 후면 비행기가 뜬다. 셔틀버스에서 거의 한 시간을 있었던 건가?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뉴욕 가죠? 뛰어요!”


또 다른 공항 직원이다. 뛰란다. 협박하는 거야, 지금? 뛰어야 한다. 뛰기는 하는데, 열심히 뛸 생각은 없다. 내게 가해지는 압력이, 겉돈다. 또 줄이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걸까? 짐 검사를 하는 줄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한다. 승객이 내린다. 셔틀버스를 탄다. 공항 건물로 들어간다. 기계에 지문을 문지른다. 여권을 확인한다. 다시 짐 검사를 한다. 비행기를 탄다. 그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진다. 날아간다. 같은 활주로로 되돌아오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상이 이토록 미련하다. 몸집이 작은 여자가 떠올랐다. 무례한 여자가 아니라 현명한 여자였다. 그녀의 동작이, 표정이 선명하다. 이제야 겁에 질린다. 이 줄을 성실하게 기다리면, 비행기는 놓친다.


“미안해요. 먼저 갈게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앞사람의 어깨를 낚아채고, 앞으로 나갔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타야 한다. 75만 원짜리 항공권의 비밀은 푸동공항이었다. 놓칠 게 빤한 비행기로 손님을 태웠다. 그래서 75만 원이다. 내 몸에 붙은 빨간딱지는 일종의 통행증이라서, 중국인들은 얼마든지 길을 터줬다. 무례하고, 다급한 한국인은 모든 중국인을 밀쳐냈다. 여행 따위가 왜 대단하냐고? 뉴욕 행 비행기가 나를 기다린다. 이미 활주로를 천천히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뛰어야 한다. 모든 빛나는 순간은 자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몰두의 힘으로 빛난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두렵고, 차갑다.


PS 매일 글을 써요. 지구 끝까지 닿고 싶은 야망 넘치는 글쟁이라서요. 도서관에 자주 가시나요? 학교 선생님이신가요? 군인이신가요? 박민우의 책들을 신청해 주세요. 덕 좀 보고 삽시다.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어요. 9년간 방콕에 머물면서 찜했던 단골 카페, 식당 이야기랑, 태국 음식 이야기를 담았어요. 즐겨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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